언제부터였을까, 지겹도록 건조한 일상의 반복이 시작된 것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꽤나 오랫동안 나는 이 생활을 지속해 왔고 지금은 그 생활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마치 오랜 기간을 만난 연인 사이에는 더 이상의 설렘과 풋풋함이 없는 것처럼. 그래서 그런거였을까. 오래 만난 연인에게 늘 찾아온다는 권태기처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건조하고 팍팍한 일상에서 한 번 벗어나 보고 싶다, 뭔가 말랑말랑하고 몽글몽글한 새로움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또 일상에 문득 찾아온 권태기가 점점 사그라들 때쯤, ‘딩동’하는 핸드폰 알람음이 울렸다. 가끔씩 눈요기용으로만 사용하는 SNS 친구신청 알림메시지였다.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한 내 인간관계에 새로울 사람이라고는 없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친구 신청한 그의 이름을 보니 어렴풋이 머릿속에 들어오는 세 글자, ‘조수호’.
그였다.
작년 여름, 한 9개월 전쯤이었지 아마. 회사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원하는 날짜에 휴가를 받지 못하고 남들 다 여름을 즐기고 난 후에나 느지막이 3일 휴가를 받았었다. 그래도 나름 휴가인데 하는 마음에 아무 계획 없이 덜컥 기차표부터 끊어 놓았다. 목적지는 파주, 지방에 사는 나로서는 최고의 결정이자,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나의 파주로의 반짝 휴가는 시작되었다. 여행은 늘 언제나 그렇듯 향하는 곳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적어도 나에게 파주는 그런 도시였다. 잘 알지 못하는 곳에 대한 두려움과 그래서 더 많이 보고 느끼고 싶다는 벅찬 욕심을 안고 기차에 올랐다. 기차여행에는 음악이 빠질 수 없단 생각에 준비한 라즈베리필드의 ‘청춘열차’라는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혼자라도 왠지 기분이 좋은 여행길 / 설렘 가득 안고 달려가고 있어 / 낡은 철길 위로 맑은 하늘 바라보네 / 내 마음은 바람소리에 맞춰 춤을 춰
노랫가사가 내 마음의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행복하고 행복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파주의 모습은 파랬다. 파아란 하늘과 초록나무로 가득 찬 이곳이 왠지 모르게 좋았다. 제일 먼저 발걸음이 향한 곳은 말로만 듣던, 아니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너무나도 아기자기하고 예뻤던, 파주출판단지였다. 좋아하는 것 세 가지를 꼽으라면 엄마, 돈, 책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책은 그런 존재다 내게, 그래서 더 ‘파주’라는 곳이 특별한지도 모르겠다. 과연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어떤 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는지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고, 행운이었다.
‘행운’, 아마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조수호’. 그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출판단지 안에 있던 지혜의 숲이었던가. 온통 책으로 뒤덮인 그 곳에서 나와 그는 처음 만났고, 서로 통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그의 미묘하지만 애써 담담하게 건넨 첫마디는 ‘저.. 책 좀 추천 부탁드려도 될까요?’였다. 그리고는 시작된 우리의 이야기는 그날 해가 저물 때까지 계속되었고 급기야는 다음날 임진각까지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알고 보니 그는 파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다. 그럼에도 일부러 그러는 건지, 진짜 어리숙한 사람이여서 그랬는지 임진각을 가는 데에도 꽤나 애를 먹었다. 그래도 참으로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과 만나 함께 서로의 마음과 이야기를 공유한다는 것은 꽤나 신선하고 즐거운 일이였다. 그렇게 3일이라는 시간을 그와 파주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때로는 말할 수 없는 어색함이 감돌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두근거리고 떨렸던 나의 여행. 그는 더 오랜 시간을 나와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듯 보였지만 이제는 현실의 나로 돌아와야 할 때였다. 기차역까지 바래다주면서 그는 말했다. ‘은하씨, 우리 또 만나요. 또 만나고 싶어요.’라며, 그렇게 나는 떠나고, 그는 남았다. 그리고 그 뒤로 간간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연락을 주고받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점점 연락을 하는 횟수가 뜸해졌고, 절대로 마르지 않을 것 같은 이야깃거리도 다 써버린 듯 형식적인 인사들만 주고받다가... 그렇게 서로를 조금씩 기억의 저편으로 묻어버렸다.
그런데 지금 딱, 내가 일상에서의 나른함과 권태로움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기라도 한 듯 먼저 손길을 내민 그에게 나는 어떤 대답을 주어야 할까. 그냥 친구신청이라기엔 너무나도 오랜만이고, 그렇다고 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에도 너무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곧, 떠올랐다. 그를 위한, 아니 그와 나를 위한 명쾌한 대답을.
떠나기로 했다. 다시. 내가 좋아하는 책이 있는,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있는 그 곳, 파주로.
갑자기 지난 여름의 기억들이 하나 둘 내 가슴 속에 와 닿으며 또 다시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그래서 예전의 설렘과 풋풋함, 새로움이 가득한 나 자신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이번에도 파주행 기차표를 덜컥 끊어버렸다.
자, 따라하세요.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죄송합니다. 아픕니다.
다시 한 번 따라하세요. 자, 저기 알리씨. 입을 더 크게 벌려야 소리도 크게 나지요.
외국인 근로자들은 점심시간 전 10분 동안 기초 한국어 회화를 배운다. 배운다기보다는 반복적으로 따라 읽는 것이다. 한국말이 서툰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알찬 시간이 된다.
“장미씨는 한국말 잘 하니까 이런 수업이 필요 없죠? 그래서 우리 조선족 사람들이 참 좋아. 말도 잘 통하고 일도 야무지게 잘 하고. 자자 손님들 몰릴 시간입니다. 서두르세요.”
경영지원이라는 팀의 차장은 슬쩍 장미의 어깨를 톡톡 치며 능글스런 얼굴을 하고 지나쳤다.
공장이나 공단에서 그렇듯 서울 주변 식당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의 고용률은 대폭 상승했다. 국적도 언어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지만 그중에서도 연변사람 즉 조선족들의 고용률이 눈에 띄게 많았다. 아마 외국인근로자라는 이유로 임금 부담이 낮은데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장점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 ‘코리안 드림’을 가슴에 품고 하루를 버텨가고 있다. 임금을 받으면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기고 모두 고향으로 보내고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아파도 아프지 말아야 했다.
저기요, 여기 이거 고기 정량 맞아요? 저기요, 여기 반찬 좀 더 달라는데 왜 안 갖다 줘요? TV프로그램 채널 좀 돌리게 리모컨 좀 가져다 줘요.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말투와 억양이 좀 어색한 외국인 근로자들을 보면 유난히 뾰족한 말투로 그들을 대했다. 여기 사장 나오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반말로 야, 너라고 말하는 사람, 심지어는 욕설까지 아무렇지도 내뱉는 사람들까지.
사실 그들을 홀대하는 것은 식당을 찾은 손님들만은 아니었다. 식당에서도 일종 텃새라는 명목으로 그들에게 좀 더 험한 일을 한다거나 사고가 났을 때 처리들이 그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주방에서 일을 하다 화상을 입었다거나 배달을 나갔다가 오토바이 사고라도 나면 병원비를 지급해주기는커녕 오토바이 수리비를 임금에서 차감하는 일도 잦았다.
그들의 코리안 드림은 녹록치 않았다.
꺅. 짧은 외마디 비명이 주방 창고 쪽에서 들렸다. 식당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창고 쪽으로 향했고 몇몇 사람들이 창고 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창고에서 식당 최고참 주방장이 허겁지겁 나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주방장은 별일 아니고 선반에서 물건이 장미씨 머리 쪽으로 떨어질 뻔 했다고 했다. 그런데 창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래쪽 선반에는 물건들이 어질러져 있고 장미씨가 겉옷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장미씨, 이리와 봐요. 아까는 많이 놀랐죠?”
식당에서도 유일하게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친절한 여직원이 장미를 불렀다.
“아, 네. 조금요.”
“나도 한국 사람이지만 식당일 하면서 사람들한테 정떨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야. 그러니 외국인들은 오죽할까 싶어. 나라도 나서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해주고 싶지만, 괜히 불똥 튈까 무서워서 그러지도 못하고. 씁쓸하네.”
“아니에요.”
“혹시나 사장이든 주방장이든 또 그런 일이 있다고 하면 참지 말고 말해요. 왜 당하고 있어야 해. 사실 그렇잖아. 나나 그쪽이나 여기 사장이나 다 돈 벌자고 하는 거잖아. 가족들 부양해야 하고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봐주고 외국인이라고 무조건 참고 그건 옛날 일이야. 요즘은 그런 시스템도 다 잘 돼 있다고 하더라고. 주방장일은 내가 잘 말해볼게. 놀랐을 텐데 오늘 마감은 내가 하고 들어갈 테니 얼른 집에 가봐요.”
장미는 눈물이 찔끔 났다. 서럽고 서러운 마음이 겹겹이 복받쳐 뜨거운 눈물로 흘려 내렸다. 당장이라도 짐을 싸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말처럼 쉽지 않음을 알기에 장미는 옷깃을 단단히 여몄다.
강해져야 했다. 기회의 땅에서 외로움을 딛고 당당히 일어나 꿈을 이루어야 하기에.
여자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남자는 한참을 그 시간에 멈춰있었다. 낮인지 밤인지 문 밖에 신문은 켜켜이 쌓여만 갔다. 술로 하루를 시작하고 또 술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남자가 마시는 것이 술인지 눈물인지 모를 만큼 슬픔을 잊기 위해 슬픔을 들이켰다. 얼마나 그 시간에 갇혀 있었던 건지 옆집 사는 사람이 쌓여있는 신문과 상해버린 우유들을 보고 초인종을 몇 번 누르고 간 적이 있다. 인기척을 낼 마음의 여유가 없던 남자는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렇게 몇 차례 경비 아저씨와 옆집 아주머니가 남자의 집 앞을 다녀간 뒤로 남자의 근황을 염려하는 사람은 없었다.
남자가 여자를 처음 본 것은 병원에서였다. 대학병원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동네에서는 꽤 큰 크기의 종합병원에 근무하던 여자의 직업은 간호사였다.
오토바이를 타다 균형을 잃고 넘어지면서 무릎을 크게 다친 남자는 여자가 근무하는 종합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실로 꿰맨 무릎에 소독을 하러 여자가 남자의 병실에 찾아왔다. 하얀 얼굴이라 그런지 단정한 간호사복이 잘 어울리는 여자는 순백의 천사처럼 보였다. 남자의 상처를 소독할 때면 마치 엄마처럼 상처부위를 호호 불어가며 소독약을 발랐다.
남자의 생활은 꽤 거칠었다. 어울리는 사람들은 험악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생활도 거의 해가 저문 밤에서야 시작되었다. 그런 그를 변화시킨 것도 여자였다. 사랑을 시작하게 되면서 거칠었던 생활도 점차 안정을 찾고 특별할 것 없이 잠잠하게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날도 어김없이 여자를 병원에 데려다 주는 길이었다. 매일같이 여자를 데려다 주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날따라 꺼림칙한 느낌에 잠깐 짬을 내어 여자를 데려다 주었던 것이다.
악. 짧은 비명과 함께 여자가 붉은 피를 쏟으며 자리에 쓰러졌다. 종종 어지럽다고 했었는데 그저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여긴 여자의 몸이 병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렇게 여자는 남자의 곁을 떠났다.
실로 오랜만에 남자의 집 앞에 인기척이 들렸다. 남자는 여전히 문 밖을 신경 쓰지 않았으나 강제적으로 문을 따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철컥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집 주인의 허락도 없이 현관문은 스르륵하고 열렸다.
“아직도 이러고 있는 거야? 연락을 해도 답이 없더니만.”
남자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친구의 방문 아니 무단침입이었다. 남자는 그 와중에 원래 집 주인 허락 없이 문 열어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가. 너랑 실랑이 할 힘도 없어.”
“어후, 술 냄새.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건데. 뭐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것 아니야. 밥이라도 챙겨먹어야지 이 술병들 좀 봐.”
“만사 다 귀찮으니까 가라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알아서 하긴, 너 이렇게 사는 거 하늘에서 보고 좋아 할 것 같냐? 이젠 충분해 너도 돌아와야지.”
남자의 어깨가 들썩였다. 소리도 채 새어나오지 않은 울음이었다. 아주 작은 흐느낌으로 남자는 슬픔을 삼켰다. 남자는 여자가 이렇게 아팠던 것이 모두 다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남자의 슬픔을 바라보던 친구는 남자를 억지로 차에 태웠다. 그리고는 회산백련지에 남자를 데려다 놓았다.
“자. 이제 네 모든 슬픔 여기다 다 남기고 가. 그분도 편하게 보내주고. 이젠 편하게 보내줄 때 된 것 같다.”
하얗게 핀 연꽃이 꼭 그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담담한 눈빛으로 넓게 펼쳐진 백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그녀를 조금씩 놓았다.
넓게 펼쳐진 저수지에 유독 하얗게 핀 백련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제는 놓아 보겠다고. 희고 아름다웠던 당신을 잊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슬퍼하지 않겠다며.
이게 얼마만이야? 가을빛을 닮았다기엔 너무 화려한 차림의 여자가 말했다. 십 년 만인가. 단풍은 여전하네. 곱다 고와.
내장산에 단풍을 보러 온 인파는 엄청났다. 색색들이 색동옷을 갈아입은 단풍과 노랑, 빨강, 분홍색의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제법 어울렸다. 내장산의 단풍은 철이 되면 으레 빨강, 노랑으로 물이 들었고 그렇게 매년 물이 드는 단풍을 사람들은 매번 놀라워하고 감동스러워했다.
“단풍 처음 봐? 뭘 그렇게 입을 헤 벌리고 봐?”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런다, 왜! 알록달록 예쁜 게 꼭 내 20대 때를 보는 것 같아서”
“이 기지배 공주병 또 도졌나보다.”
그녀는 젊었을 때 한 미모 했다는 말을 자주했다. 실제로 그녀는 나이보다 젊어보였고 지금도 예전처럼 아름다웠다. 20대의 그녀는 단풍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이 바닥에 닿기 전에 손으로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단풍나무 아래에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적도 있다. 그렇게 떨어지는 단풍나무를 하나 주워 어여쁜 글씨를 썼다. 그리고는 책속에 고이 넣어 보관을 했다.
빨갛던 단풍이 진한 갈색빛이 돌 때 쯤엔 코팅도 해서 보관하던 감성적인 그녀였다.
“조금만 천천히 걷자. 응?”
여자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여전히 친구들은 조잘거리며 그녀를 앞질러갔다. 거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어느 순간 친구들의 모습이 사라져갔다. 여자는 여전히 조금만 천천히 걷자고 말했지만 친구들이 그 말을 들었을 리 없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었잖아. 바람이 조금만 불어주면 좋겠는데.’
그녀는 단풍나무 아래에 서서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다. 그 옛날 책 속에 꽂고 다니던 단풍나무를 찾아보기 위해서이다. 단풍은 여전했다. 늙지도 않고 젊지도 않은 알록달록한 색채를 풍겼다.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고 단풍만큼 알록달록한 모습으로 산을 찾았다.
산을 오르기 위함인지 단풍을 보기 위함인지 몰랐지만 사람들은 즐거워보였다.
바람이 불었다.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 떨어지는 낙엽이 있는지 둘러보았다.
바람이 한 차례 더 불었고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헬기가 높이 떠올라 있었고 사람들은 헬기를 향해 손을 흔들어댔다.
9시뉴스에서 단풍을 찍는 듯했다. 아니 단풍을 보러 온 사람들을 찍는 것일 수도 있다. 여자도 찍혔을까? 아니면 먼저 올라간 친구들의 모습이 담겼을 지도 모르겠다.
여자는 떨어지는 단풍을 코앞에서 잡아챘다. 구겨지지 않게 잘 보관할 수 있을까. 단풍에 그녀는 이렇게 적을 것이다. 사람들이 많은 오후, 단풍이 내게로 왔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단풍이다. 여전히 고운 빛을 띠고 있다. 내년이면 어떤 빛을 낼까.
바람이 불면 알록달록한 잎이 떨어진다. 잎이 떨어지면 갈색빛으로 늙을 것이다. 노랗고 빨갛던 단풍도 갈색으로 색을 잃으며 늙을 것이다. 그녀처럼.
어느 날, 후배 한 명이 미리 주는 생일 선물이라며 김광석의 베스트 앨범 한 장을 건네 왔다. <서른 즈음에>라는 곡명에 형광펜으로 체크가 되어 있는 것을 보니 나를 곯리려 작정을 한 것이 분명했다. 괘씸하기는 했지만, 명곡은 명곡이었다. 신세대라고 하기에는 구세대이고, 구세대라고 하기에는 신세대인 어정쩡한 나이가 된 나는 이수영이나 성시경의 노래보다는 김광석의 노래를 더 사랑했다.
헤어진 전 여자 친구이기도 한 후배는 ‘술 좀 줄이시고요.’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또 마침 소주 안주로 제일인 것이 김광석의 노래라 하지 않았는가.
결국 과음을 한 탓에 다음 날 수업에 나가지 않자, 후배가 뺨을 붉히며 숙취 해소 음료 하나를 건네 왔다. 후배의 복잡한 표정에서, 그 애가 못다 한 말들이 읽혔다. ‘선배님, 장난 치고는 좀 심했죠. 여러모로 머리가 복잡하실 걸 모르는 게 아닌데. 기분 전환이나 하시라고 드린 선물이었는데,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하고 말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고맙다는 말 대신, 뜬금없이 대구에 있다는 김광석 길에 함께 가주지 않겠냐는 말을 했다. 술이 덜 깨서일까, 아니면 김광석의 달콤하고도 쌉쌀한 노래들을 어제 하루 종일 들어서였을까. 아차 하는 마음에 미안하다고 말하려 하는데, 후배가 그러자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배가 다음 수업이 있다며 인사를 하고 강의실을 나간 뒤에도, 나는 좋아해야 하는 것인지 후회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머리만 긁적이고 있었다.
술은, 정말로 마시지 않을 생각이었다. 헤어진 후로 몇 달이나,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가 오가지 않았었다. 그러던 와중에 선물로 받은 것이 김광석의 앨범이요, 몇 달 만에 들어보는 따뜻한 말이 술을 좀 줄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김광석의 노래가 내 방을 가득 채우니 술이 고픈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에서 <이등병의 편지>를 거쳐 타이틀곡인 <변해가네>까지는 그럭저럭 견뎠지만, <서른 즈음에>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냉장고를 열고 소주병을 꺼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랬다. 농담처럼, 내게도 서른이 왔다. 철부지 새내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몇 번의 작은 성공과 몇 번의 연애, 그리고 몇 번의 쓰린 실패 끝에 내게도 서른이 오고야 만 것이다. 잦은 휴학에, 아직 대학 졸업장도 받지 못했는데 말이다.
안주 없이 소주잔을 비우며 몇 방울의 눈물을 떨궜던 것 같기도 하다. 서른이라는 막막한 숫자 앞에, 그리고 서른이 되도록 무엇 하나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거울 앞의 내 모습에 말이다. 내 인생의 역할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계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며, 내 안의 어떤 것이 같이 죽어버렸다. 울고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아버지의 시신을 보았을 때, 영영 무너지지 않을 아버지의 철옹성 같던 어깨가 실은 작은 새처럼 여린 것이었음을 알게 되어 버린 것이다. 내가 가장 크게 믿던 사람이 그렇게 한 순간에 한 줌의 재가 되었다.
“현석아, 네가 이제 우리 집의 기둥이여.”
나는 어머니의 그 말이 싫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머니와 여동생의 버팀목 역할을 맡아야 했고, 그 자리가 두려워 계속 뒷걸음질만을 치다가 끝내 주저 앉아버리고야 말았다. 우스운 노릇이었다.
다가온 주말에 나는 정말로 후배와, 아니 내 전 여자 친구와 함께 대구행 기차를 탔다. 여전히 조금은 어색한 사이였기에 애초에 많은 대화가 오가지도 않았고, 삼십 분이 채 되지 않아 간간히 오가던 대화마저 완전히 끊겨 버렸다. 서로 감정이 상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연애는 이미 지난 일이었다.
그 나른한 봄의 정적 속에서, 나는 잊고 있었던 풍경 하나를 기억해 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아버지의 서른 즈음에 있었던 일을 말이다. 만취하여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김광석의 노래를 열창하셨다. 다른 어떤 노래도 아닌, <서른 즈음에>를. 그것도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라는 부분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부르셨다. 비어가던 서른 살 아버지의 가슴을 다시 차오르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툭, 하고 내 어깨 위로 고개 하나가 기울었다. 그 애가 봄기운에 취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것을, 나는 서른 즈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 이번 연말에는 어디 갈 거예요?”
딸의 머릿속에는 이미 가보고 싶은 곳이 가득한 것 같았지만, 이번에는 산통을 좀 깨야겠다. 나도 내년에는 꼭 내 시집을 내리라 결심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번에는 멀리 가지 말자. 연말 되면 카운트다운 하는 곳 있잖아. 거기 가서 타종식 한 번 보고 오는 건 어때? 아빠가 옛날에 가 봤는데, 가수들도 많이 오고 불꽃놀이도 해.”
싫다고 떼를 쓰면 어떡하나 하고 있었는데, 자기도 그런 의미 있는 곳에 가는 게 좋다고 하는 것을 보니, 딸도 이제 어린애는 아닌 모양이었다. 우리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도 꼭 한 번 직접 타종식을 보고 싶었다며 한 수 거들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 가족의 연말 맞이 여행, 아니 연말 맞이 나들이 장소가 결정되었다.
서울 시내 어디가 북적거리지 않겠냐마는, 내가 젊은 시절부터 가장 좋아하는 북적임이 있다. 바로 광화문을 중심으로 한 일대. 시간이 비는 오후면 교보문고에 들러 소설책을 한 권 읽고 가기도 하고, 아직 초등학생인 조카들을 데리고 세종대왕 동상과 그 아래 숨겨진 박물관을 견학하기도 했다.
몇 년 전, 수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모였던 촛불집회가 열렸던 곳도 바로 이 세종대왕 동상 앞이다. 그리고 대학생 시절 사회 운동을 하러 나왔을 때, 회사원들이 건물 창밖으로 두루마리 휴지를 던지며 무언의 응원을 보내던 장관도 바로 이곳에서 이루어졌었다. 젊은 시절 아내와 함께 거닐었던 경복궁이 동상 너머에 있었었으며, 청계천이 처음 조성되었을 때에도 이곳에서 시작되는 물길을 보러 왔었다.
그렇다. 내게 있어 광화문은, 내가 아는 수십 년의 서울의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세 시간 쯤 여유를 두고 광화문에 도착했다. 몰려드는 인파를 한 번에 감당할 수 없어 타종식이 있기 얼마 전에는 교통을 통제하기 때문에 종각에 미리 가 봐야 소용이 없으니, 그 전에 가족들과 함께 이 광화문 일대의 문화를 느껴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은 또 크리스마스였기에, 거리는 아직 오색 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상가들이 크리스마스와 연말 행사를 한 번에 챙길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 이어’였다.
나는 아내에게 근래에 크게 유행했던 로맨스 영화의 원작 소설 한 권을, 아내는 딸이 요새 푹 빠져 있는 외국 밴드의 앨범 한 장을, 딸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의 새로 나온 시집 한 권을 선물했다.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건실한 문화 향유층이야. 문화 시민이 달리 뭐 있겠어?”
딸이 건넨 말에 한바탕 웃으며 교보문고를 빠져나왔다. 청계 광장을 한 바퀴 둘러보러 왔는데, 청계천에도 언제나처럼 아름다운 조명들이 밝혀져 있었다.
“여기서 예전에 등 축제 정말 예뻤는데. 아빠가 매일 그렇게 광화문 노래를 불러도 안 와 닿더니, 그 때는 정말 세상에서 여기가 제일 아름다운 것 같았다니까요.”
그래, 문화라는 것이 말로 백 번 들어 무엇 하겠는가. 한 번 눈으로 보면 단숨에 반해버릴 것을. 내 철학을 늘어놓았다가는 면박을 면치 못할 것이기에, 마음속으로 할 말을 삼키며 웃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제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여기저기서 전화를 걸어 ‘새해 복 많이 받아!’하는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무척이나 정겨워 보였다. 오죽하면 이 일대에서만 휴대전화가 반쯤 불통이 되었겠는가. 사람들의 입가에는 하나같이 함박웃음이 걸려 있었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신나게 소리를 지르다 보니 행사는 모두 끝났지만, 하늘에는 여전히 삼천 원짜리 싸구려 불꽃이 팡팡 터진다. 화약재가 그대로 떨어져 내리는데, 아무도 얼굴을 찌푸리거나 옷을 털어내지 않았다. 우리 가족도 노점상에서 파는 핫도그 하나씩을 들고, 축제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광화문을 걸었다. 평소에는 길거리 음식이라면 학을 떼는 아내도 오늘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지금 이곳이 바로 살아 숨 쉬는 서울 문화의 거리였다.
오늘도 조용히 어머니가 작은 소반에 밥과 국, 반찬을 담아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민철의 점심을 주기 위함이었다. 몇 날 며칠 술에 취해 사네 못사네 하던 아들을 위해 조용한 걸음으로 콩나물국을 끓여온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이놈의 후레자식이라고 욕을 한 바가지 했을 아버지였지만 그저 잠잠히 신문만 바라보신다.
민철은 아버지와의 추억이 없다. 아버지가 소리 한번 크게 내실 때면 심장이 떨려 오줌을 지린 적도 있었다. 민철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정하게 학교를 데려다 주는 친구의 아버지나 학원을 땡땡이쳐도 눈감아주고 함께 분식집에 들어가는 아버지. 민철에게 그런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옆집 아저씨라면 모를까.
그맘때 아이들이라면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놀이공원 가족사진. 민철에게는 사진 대신 민철이 그려놓은 그림 한 장뿐이었다. 그림에도 아버지는 없다. 엄마와 민철 그리고 남동생뿐.
설사 그 그림을 아버지가 보았다고 해도 민철이 아는 아버지라면 조금도 서운해하지 않았을 거다.
민철의 고등학교 친구들은 담배를 피웠다. 가끔 술도 마셨으나 다행히 민철에게 권하지는 않았다. 민철은 친구들이 소위 나쁜 짓을 할 때에도 아버지가 무서워 일탈을 꿈꿔본 적도 없다. 혹 꿈에 그런 장면이 나왔더라도 놀란 마음에 하루 종일 가시방석 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민철은 대학도 부모님이 원하시던 의대에 갔고 크게 속 한 번 썩힌 적이 없는 착한 아들이었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민철에게 큰 사건이 터졌다. 예기치 않게 찾아온 의료사고.
단순히 민철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환자 가족들도 크게 노여워하지 않았지만 민철은 혼란에 빠졌다. 처음으로 자신이 집도한 환자가 생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민철은 의사를 그만두어야 하나 생각할 정도로 혼란스러웠고 다시는 메스를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고가 있고 난 뒤 민철은 일주일간 휴가를 냈다. 몇 날 며칠을 술로 지새우던 그에게 아버지가 조용히 다가갔다.
“옷 챙겨 입고 나와라.”
민철이 대답을 하기도전에 아버지는 조용히 낚시도구를 챙기셨다. 집 밖을 나가기도 싫었던 민철도 웬일인지 말없이 따라나섰다.
아버지가 낚시를 간다고 하면 어김없이 오던 곳이다. 그곳에서 둘은 하염없이 낚싯대만 바라보았다.
“미안하구나.”
낮은 음성으로 아버지가 말했다. 민철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며칠째 술만 퍼마셔서 그런지 헛것이 들리는 줄 알았다. 그래서 미쳐 대답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못 했다.
“많이 힘드냐. 자식 다 큰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 사람이 죽는다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거다. 그 사람 목숨 생각하면서 더 많은 사람 목숨을 위해 노력하면 되지 않겠냐.”
그렇게 무섭던 아버지가 왜 미안하다고 하셨을까. 그리고 아버지가 미안해해야 하는 건 무엇일까. 어릴 적 놀이동산에 한번 데려가지 않은 일일까 아니면 회초리 한 대 정도면 될 것을 열대를 때리고도 모자라 씩씩거린 일을 말하는 걸까.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는지 던져놓은 찌가 들썩거렸다. 하지만 아버지도 민철도 낚싯대를 건져 올리지 않았다. 다시금 찌가 잠잠해졌다. 미끼만 먹고 달아났다 보다.
아버지는 민철이 어렸을 적 이곳에 온 적이 있다고 했다. 민철이 기억을 못 하는 것일까. 아니면 민철의 기억 속에 있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민철이 스스로 지운 것일까.
민철은 퉁퉁 부은 아버지의 손을 말없이 잡아주었다. 그리고는 이 시간을 잊지 않으려는 듯 낚시터를 빙 둘러볼 뿐이었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뉴스에서는 비닐하우스에서 딸기를 따던 노인의 갑작스런 사망을 보도했다. 사실상 장마나 태풍이 왔다고 해도 기승을 부리는 더위는 쉽게 가실 줄을 몰랐고 사람이고 식물이고 더위에 지칠 수밖에 없었다.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는 곳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렀다.
택배 배달 일을 하는 나는 유난히 더위에 도출이 잦았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옷이 땀에 젖었다 말랐다 해서 비릿한 냄새가 났다. 아내는 내 땀냄새를 보고 돈냄새라고 했다. 아내에게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이었지만 순수하던 아내가 속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했다.
일하던 중 유일하게 쉴 수 있었던 곳은 시원한 백화점이나 좋은 건물에 배달을 가는 것이었다. 운이 좋으면 시원한 음료를 건네기도 했고 수령인이 한 10분만 기다려 달라고 하면 못이기는 척 시원한 곳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기다려주기도 했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아마도 폭염주의보가 사흘째 이어지던 날일 것이다. 온 몸에 주름진 곳이라면 땀이 끼어있었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고 쉴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수십 개 아니 수백 개의 노란색 박스를 옮겨 담았다. 오로지 아내와 딸아이를 생각하면서였다.
순간 핑.
하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눈을 끔뻑이며 정신을 차려보려고 했으나 이미 하늘은 노란빛을 띠었고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 두 개로 겹쳐 보이다 이내 검은 빛을 띠었다. 악 소리 한번 질러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상자박스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그 다음은 기억이 없다. 눈을 떠보니 하얀색 천장이 보였고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아내의 얼굴이 보였다. 아내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고 내가 눈을 뜬 것을 확인한 뒤 이내 약간의 혈색이 도는 듯 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내의 얼굴임을 알면서도 잠시 동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곳이 어디인지, 나는 왜 여기에 누워있는지.
“당신 괜찮아요? 정신 잃고 쓰러졌었는데.”
순간 하늘이 핑 돌더니 이내 쓰러졌던 모양이다. 건강만큼은 자신한다고 생각했는데, 택배 일 하면서 절로 운동한다고 탄탄해진 허벅지를 자랑했는데 이내 쓰러진 모양이었다.
“쓰러졌다고? 얼마나?”
“쓰러지자마자 누가 바로 보고 신고해줘서 다행이었어요. 지금 한 한 시간 정도 지났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그래? 이제 괜찮아. 그나저나 배달은 어떻게 한담.”
“지금 배달이 문제에요? 당신 열사병 때문에 쓰러진 거래요. 날이 계속 덥더니만.”
“열사병?”
쓰러진 이유가 과로이거나 빈혈인 줄 알았는데 열사병이었다. 그날따라 덥더라니.
퇴원 수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약을 처방받고 며칠간은 뜨거운 곳에서 지나치게 운동을 하거나 일을 하는 것을 삼가라고 했다.
지나치게 운동을 하거나 고온 환경에서 일을 삼가라니. 일을 바로 쉴 수는 없었다. 그저 요령껏 땡볕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시원한 물을 자주 마셔주는 것 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출근 준비를 위해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데 아내가 웬 봉투를 쓱 내민다.
“이거 입고 다녀요. 이거 최고 좋은 거라 비싸게 주고 산거니까.”
아내가 내민 것은 모시양말과 손수건, 개량한복처럼 생긴 모시옷이었다.
“한산 모시? 모시를 입고 출근하라는 거야?”
“모시는 뭐 노인네들만 입으라는 법 있어요? 요즘 젊은이들도 시원하고 가볍고 통풍 잘된다고 다 입고 다녀요. 당신 또 쓰러지면 어떻게 해? 그러니까 그냥 입어요.”
아내는 내가 쓰러졌을 때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아내가 준비해 준 옷을 한번 입어본다. 바람이 분 것도 아닌데 시원했다.
살갗을 스치는 까슬까슬한 느낌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