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그리움을 말로 다 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의례적으로 어떤 장소를 찾아가곤 한다. 그곳에서 보고 싶은 사람의 흔적을 더듬어보기도 하고 음성을 떠올리며 추억의 끝을 걸어보곤 한다. 항상 후회는 무언가 지나고 난 후에 스며드는 것이라 했던가. 준서는 문득 부모님을 만나러 그곳에 간다.
그곳은 늘 조용했다. 먼발치에서 동그랗고 작은 무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약간 허무하기도 했다. 두 분이 나란히 사이좋게 누워계시는 곳이지만 준서의 눈에는 잔디가 무성한 작은 언덕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맨손으로 무덤가에 자란 잡초를 몇 개 뜯으며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 저 왔어요. 저 준서 왔어요.”
혼자서 이야기 하는 것이 어색한 것인지 듣는 사람이 눈앞에 보이지 않아서인지 준서는 퍽 어색해했다. 마치 연극무대에서 독백을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준서는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 부모님과 제법 자주 마찰을 빚었다. 그래서일까 준서는 꽤 긴 방황을 했고 준서의 부모님도 많이 지쳐있었다. 외아들이라 오냐오냐 곱게만 자랐을 것 같다는 다른 사람의 시선과는 다르게 준서의 부모님은 꽤 엄하셨다. 교수였던 아버지는 아들의 방황이나 조금의 일탈도 용납하지 않으셨고 그럴수록 준서는 더 엇나가기만 했다.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생각과 어머니의 방관은 준서를 더욱 힘들게 했다.
준서는 차라리 이럴 거면 부모님이 없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품었다는 것이 몇 년 후 뼈저리게 아픈 말로 남을 줄은 준서도 몰랐을 것이다.
종이컵에 소주를 조금 따르고 절을 올렸다.
“저 곧 결혼해요. 듣고 계시죠? 좋은 사람이에요. 저한테도 잘해주고 마음도 넓어요. 저 이런 유별난 성격 다 받아주는 사람이면 어머니 아버지도 이 여자 인정해주실 거라 믿어요. 부모님 없이 결혼한다고 생각하니까 문득 서글퍼져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이렇게 여기 누워계시니까 정말이지 그 때는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결혼을 하고 아이도 태어나면 부모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전 아버지처럼은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늘 어머니를 외롭게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이렇게 옆에 나란히 누워 손 잡아주고 계시죠?”
준서는 부모님이 가지런히 누워계신 이곳을 자주 찾지 않았었다. 옛날에는 삼년상이라고 해서 부모가 돌아가신 후 3년 동안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부모에 대한 효를 다하고자 여막에 거처하며 아침저녁으로 식사를 올리고 호랑이한테 잡혀가서도 묘성을 쌓기 전까지 죽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하였다던데 준서는 어쩐지 이곳이 낯설었다.
이렇게 부모님께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는 것도 새삼 놀라울 일이었다.
곧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될 준비를 해서일까 준서는 새삼 부모님의 곁이 그리웠다. 호통을 쳐도 쓴 소리를 해도 좋으니 곁에만 함께 있어주기를 바랐다.
산소에 오기 전 준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올리는 편지를 썼다. 어버이날에도 써보지 않았던 서툰 편지로 준서는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그리고 산소 앞에 조심히 편지를 놓아두었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 편지였지만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진실 된 편지였다.
편지를 놓아두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왠지 부모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온 기분이었다. 그리고 낯설 것만 같았던 이 길이 낯설지 않았던 것처럼 다시 이곳을 찾고 부모님을 뵐 때도 낯설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짜증이 많고 늘 우울해하셨으며, 전쟁 때 팔 한 쪽을 잃어 보기 흉한 외모를 하고 있었다. 입만 여시면 세상을, 정부를,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저주하고 비관하는 말만을 하셨기에 할아버지 댁에 방문하는 것은 낙천주의자인 내게는 꽤나 고역이었다. 자식들이 모두 성공한데다가 할아버지를 극진히 모셔서, 생활비로 쓰고도 저축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이 매달 들어오시는데도 굳이 불편한 몸으로 밭을 일구시는 억척스러운 면도 싫었다. 술을 드신 날이면 좋은 옷을 입은 자식들이며 손주들에게 손가락질을 하시며 우셨고, 서울에 사시는 것을 한사코 마다하시고 먼 김포땅 끝자락에 집을 지으셨다. 어렸던 나는, 그 괴팍한 성미의 할아버지에게 어른들이 한 번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린 적이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지난 해 겨울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술에 잔뜩 취하셔서 집으로 돌아오시다 넘어지셨는데, 그만 일어나지 못하시고 동사하셨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유골을 강에 뿌리고 돌아오던 날,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기일마다 애기봉에 오를 것을 제안하셨다.
“왜 하필 산에 올라요?”
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려서부터 할아버지를 무서워하고 피하기만 하는 통에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줄 기회가 없었다고 하시며 긴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리고 나는 그 때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할아버지가 실향민이며, 할머니를 북쪽에 두고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쟁 중에 한쪽 팔을 잃은 할아버지는 아내와 아이들을 부탁했던 친구 집을 찾았다. 아내가 달려 나와 자신을 맞아 줄 줄로만 알았는데, 그곳에는 아이들뿐이었다. 할머니는 아이들을 감싸다 크게 다쳐 도저히 남으로 넘어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냥 자신을 버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치라고 하셨고, 워낙에 급박한 상황에 친구네 가족은 할머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아이들만을 겨우 챙겨 남으로 넘어왔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불편하신 몸으로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형제를 열심히 키우셨지만, 한편으로는 북에 두고 온 할머니 생각에 매일같이 괴로워하셨다고 한다. 돌아가셨으면 시신 수습도 제대로 못 한 것이, 살아 계시면 외롭게 혼자 살아 계실 것이 걱정이셨다. 자식들이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북한에 계실 할머니 걱정에 마음이 편치 않아 하셨다고 한다.
애기봉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에 있었다. 애기봉 전망대에 오르면 강 너머의 북한에 있는 마을까지도 맨눈으로 건너다 볼 수 있었는데, 텔레비전에서나 접하던 북한의 모습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애기봉이라는 이름은 병자호란 때 혼자 강을 넘어 피신한 기생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애기라는 이름을 가진 이 기생은 평양 감사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자신만 강을 건너고 평양 감사는 그대로 청나라에 잡혀가자 감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가 이 봉우리에서 죽었다고 한다. 후에 이것이 이산가족의 모습 같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 이름 없는 봉우리에 애기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나는 어쩌면 할아버지도 할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꿈처럼 강을 건너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장난감을 들고 있던 내게 손가락질을 하며 우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때 그 손을 잡아드릴 수 있었다면 할아버지는 울음을 그치셨을까. 할아버지의 고개. 나는 애기봉에 그런 이름을 붙여 보기로 했다.
내가 생각한 여행은 이런 것이었다. 친구와 도란도란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며 푹 쉬다 돌아가는 국내 여행. ‘레일바이크를 타고 섬진강변을 따라가며 자연을 만끽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나 홀로 여행이 되고 말았다.
새벽 여섯 시쯤 되었나, 민정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왜 벌써 전화했어. 일곱 시에 만나기로 했잖아.”
“우리 쁘띠가, 우리 쁘띠가! 흐윽윽윽!”
쁘띠는 민정이 키우는 개다. 나이가 열 살이 넘었으니 사람으로 치면 노인에 가깝다. 외동인 민정과는 형제처럼 지낸지라 쁘띠에 대한 민정의 사랑이 상당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쁘띠가 호흡곤란이 왔단다. 그래서 민정은 지금 24시간 동물병원에서 대기 중이다. 결국 민정은 여행 출발 한 시간 전, 펑크를 냈다.
그렇다고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열차도 끊고, 숙소도 예매하고, 고대하던 레일바이크도 나를 기다린다. 혼자라고 못 탈쏘냐! 난 결국 혼자만의 여행을 감행했다.
그러나 애초에 시작이 꼬여서 그런 걸까? 벌써 레일바이크에서 발이 묶였다. 이인용이라도 혼자 페달을 밟아 갈 생각이었는데, 혼자서는 탈 수 없단다. 그리고 이건 몰랐던 사실인데, 증기기관차가 레일바이크와 같은 레일을 사용한단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운행하긴 하지만, 그래도 자칫 잘못하면 열차랑 같이 갈 수 있다고…….
직원들이 혼자 태울 수 없다고 말리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혼자 침곡역에 멀뚱히 앉아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나는 눈에 불을 켜고 나처럼 혼자온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어쨌든 둘이 타기만하면 되는 거 아닌가! 모르는 사람이라도 좋으니 어떻게든 레일바이크를 타고 싶었다. 그때, 침곡역 구석에 앉아있는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저기, 혼자 오셨어요?”
“아, 네.”
“괜찮으시면 저랑 레일바이크 타실래요? 저도 혼자 왔거든요.”
“아, 그런데 어쩌죠. 저도 레일바이크 탈 생각으로 왔는데, 아까 곡성역에서 그만 다리를 삐끗했어요. 오기로 오긴 했는데, 아무래도 페달밟는건 무리 같네요. 죄송해요.”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내가 아니었다.
“일단 타세요! 페달을 저 혼자 밟을게요. 보시다시피 저 허벅지 끝내줘요.”
나는 막무가내로 남자의 승낙을 받아냈다. 그리고 절룩이는 그를 부축하여 레일바이크에 태웠다.
“여기 직원들 앞에서는 다리 안 아픈척 하세요. 잘못하면 또 저지당하니까.”
신호와 함께 꿈에 그리던 레일바이크 체험이 시작됐다.
“여러분! 앞사람과 간격 맞추시고, 뒤처지지 않게 페달 열심히 밟으세요!”
그러나 우리 앞에는 운 없게도 건장한 남자 둘이 타고 있었다. 그들을 태운 레일 바이크는 이미 저 멀리 사라진 후였다.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죄송해요! 한쪽다리로라도 페달 좀 밟아볼게요.”
남자는 미안해했다. 침곡역에서 가정역까지 레일바이크로 사십분 정도 걸린다는데, 십오 분 정도 왔을까? 벌써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분명 섬진강은 아름다웠고. 레일 위를 지나는 기분도 좋았다. 그렇지만 너무 힘들었고, 증기기관차가 언제 돌진할지 모른다는 이상한 공포가 밀려왔다. 아직 레일바이크 타다 증기기관차에 치여 죽었다는 얘기는 못들은 것 같긴 한데……. 도저히 기운이 나질 않았다. 젖 먹던 힘까지도 쥐어짤 수 있는 동기부여가 절실했다.
나는 페달을 밟으며 소리쳤다.
“저기요!”
“네?”
“제가 너무 기운이 없어서 그러는데요! 페달 빨리 밟게 힘 좀 북돋아주실래요?”
“어, 어떻게요? 음악 틀어드릴까요?”
“아뇨!”
남자는 놀라 눈이 휘둥그레 졌다.
“그럼, 제가 불러야 돼요?”
“아뇨! 노래 말고 다른 거요.”
이 말을 할까 말까 할까 말까 하다가 그냥 뱉었다. 아, 내가 죽겠다는데! 우리 두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잖아!
“가정역 도착하면 저랑 맥주한잔 하실래요?”
내 말을 들은 남자의 얼굴에서 약간의 긴장이 사라졌다. 오호, 싫지는 않은가본데?
“하하. 네, 그래요. 신세도 졌으니 제가 살게요.”
하지만 나의 패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번호도 알려주세요.”
“네? 아, 알겠습니다. 밟으세요.”
아싸! 나는 신이 나서 전력을 다해 페달을 밟았다. 더욱 힘차게 밟았다.
요즘은 힐링이라는 단어로 억지스러운 여유를 만들고 자신의 행복함을 시간에 끼어 맞추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다 만들어진 여유이고 행복인데 말이다. 그렇게라도 삶의 즐거움을 찾을 수만 있다면 나쁘지 않은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숨이 약간 가빠지려고 하자 수려한 자태의 산사가 보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인지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과연 이곳에서 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을지 고민이 들었다.
그때 늙은 스님이 합장을 하며 걸어오셨다.
“사람이 많아 당황하셨나봅니다.”
“네, 스님. 이곳이 꽤 유명한 절인가봅니다. 사람이 많은 걸 보니.”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쉼을 얻어 가면 좋지요. 혹 템플스테이를 하러 오신 거라면 저를 따라오세요.”
서른이 넘은 나이에 중, 고등학생들과 템플스테이를 하게 될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이곳을 찾은 듯 했다. 위엄 있는 자태의 대웅전을 지나 작고 아담한 방 하나를 배정받았다. 그곳에 짐을 풀고 일박 이일동안 지낼 옷을 건네받았다. 옷을 갈아입고 마루에 걸터앉아 숨을 크게 들이마셔보았다. ‘공기는 좋네.’라고 생각하던 차에 비로전 앞에 한 여인이 서성이는 모습이 눈에 들었다. 나이도 꽤나 비슷해 보이는데 무엇 때문에 계속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일까 생각했다. 가까이 가볼까 생각하다가 괜히 방해하는 건 아닌가 싶어 마음을 접었다.
가볍게 저녁 발우공양을 마치고 잠시 쉬는 시간이 생겼다. 산책 겸 낮에 미처 돌아보지 못한 곳을 다녀보기 위해 이곳저곳을 살펴보는데 낮에 비로전에서 보았던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조용한 걸음으로 비로전 앞을 서성였다. 날이 어스름해져서 일까 그녀에게 궁금증이 생겼고 말을 걸어보고싶은 충동이 생겼다.
“저기. 낮부터 쭉 여기에 서계시던데.”
여자는 낯선 사람이 낮부터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여겨서일까 꽤나 경계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네, 템플스테이 하러 왔어요.”
“아, 그러시구나. 저도 템플스테이 하러왔는데. 오늘 오신 거예요?”
여자도 템플스테이를 하러 왔다고 했다. 나이도 비슷하고 이곳에 온 목적도 비슷하다고 여긴 나는 여자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조금 더 생긋 웃어보였다.
“네, 오늘요.”
여자의 대답은 그래도 단답이었다. 여자의 눈빛에서 무언가 쓸쓸함이 묻어보였다. 말하기 힘든 사연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여긴 나는 여자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저랑 나이도 엇비슷해 보이시는데, 저는 서른둘이에요. 아직 미혼이고요. 사실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힐링좀 해볼까 하고 들어왔는데 공기도 좋고 뭐, 종교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편안해 지는 것 같아요.”
여자는 무심한척했지만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이 여자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지 않을까 생각했다.
말없이 내 말만 듣던 그녀가 조용한 음성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저랑 나이가 같네요. 저도 서른둘이에요. 전 결혼을 했는데, 결혼 한지 꼬박 2년이 지났는데 아이가 안 생겨서요. 여기 비로전에서 발가벗은 동자를 발견하면 사내아이를 가질 수 있다지 뭐예요. 그래서 오늘 낮부터 계속 여기만 서성이게 되네요.”
뜻밖이었다. 여자도 템플스테이에 온 것이라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그저 잠시 쉼을 얻고자 이곳을 찾은 줄 알았다. 그런데 여자는 꽤나 속 깊은 이야기를 꺼냈다.
“그랬군요. 그래서 벌거벗은 동자는 찾았어요?”
“아니요, 잘 안보이네요. 아이와 연이 닿지 않나봐요.”
“그럼 눈을 감고 찾아보세요. 눈을 감고 눈앞에 동자승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아이를 가득 품어보세요, 그럼 누가 알아요? 떡하니 아이가 들어설지.
미안해요. 달리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네요. 그래도 전 여기 다 비우러 들어온 것 같은데 어느새 눈을 감고 조용히 명상을 해보니까 마음속에 뭔가 가득 들어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걸 말해주고 싶었어요.”
여자는 엷은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는 그녀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주려고 조용한 걸음으로 그녀의 곁을 떠나왔다.
비움과 채움은 그렇게 멀리 있는 것도 아니, 정반대인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또! 또 이야기 해주세요! 네?
손주 녀석이 주위를 맴맴 돌며 자꾸만 성가시게 군다.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성화다. 녀석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생각하는 것이 늙은이의 소일거리가 되어버렸다. 딸애가 손주를 맡기고 외출을 했을 때 하도 심심해하기에 옛날이야기를 한 번 해준 것이 시작이었다.
“동화책보다 할머니가 이야기 해주는 게 훨씬 재미있단 말이야.”
“할머니 귀찮으시니까 책을 보든가 비디오 봐. 네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빌려왔어.”
“싫어. 싫어, 할머니 무릎에 누워서 이야기 들을 거야. 메롱~”
손주 녀석이 내 무릎위에 자리를 잡고 눕더니 기어이 눈을 감고 이야기를 기다린다. 하기야 이제 좀 더 크면 이런 어리광도 못 보겠다 싶어 못이기는 척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옛날 옛날에, 아주 탐스러운 사과나무 한그루가 있었어. 사과나무는 마을 한 가운데 우물 옆에 있었지. 처음에 마을사람들은 사과나무에 탐스러운 사과가 열리면 우물물처럼 공동으로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어. 남는 것은 따다가 마을 공동 창고에 보관하면서 먹었지. 그때까지만 해도 마을에 큰 문제가 없었단다. 그런데 문제는 마을사람들의 탐욕이었단다.
언젠가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욕심이 자라났고 옆 동네 김씨가 자기네보다 더 많은 사과를 가져가는 것 같았고 옆 집 박씨가 더 탐스럽고 빛깔 좋은 사과를 먼저 골라가는 것 같이 느꼈던 거야. 마을 사람들 모두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탐스러운 사과나무가 자기네 소유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요? 막 싸우고 그랬어요?”
“원래 사람의 마음에 욕심이 들어차는 순간이 문제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던 김씨가 사과나무 근처로 가서 마을사람들 몰래 탐스러운 사과를 따기 시작했단다. 처음에는 한 다섯 개만 몰래 가지고 왔지. 그런데 도둑질이라는 게 습관이 되면 무서운 법이지. 하루 이틀이 지나고나니 김씨는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열 개, 스무 개씩 몰래 따오기 시작했단다. 원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지.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마을 회의 때 누군가가 사과나무의 사과가 자꾸만 줄어드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단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김씨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화를 내면서 그런 양심 없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걸리면 가만두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 마을사람들은 김씨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면서 사과도둑을 잡아야 한다고 했단다.
그래서 김씨는 머리를 썼단다. 자신이 도둑을 잡아오겠다고 큰 소리를 친 거지. 도둑은 아무래도 새벽녘에 나타날 테니 자신이 숨어 있다가 도둑을 잡겠다고 한 거야. 그리고는 날이 밝으면 도둑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할 속셈이었단다.
날은 어두워졌고 김씨는 우물 옆에 숨어있었단다. 그리고는 잽싸게 사과를 땄지. 그런데 그 때였어. 마을 사람 중에서도 유독 김씨를 눈여겨 본 박씨였지. 박씨는 ‘도둑이다. 사과 도둑이 나타났다’라고 소리를 치며 긴 몽둥이를 휘두르며 김씨에게로 달려왔단다. 놀란 김씨는 그만 휘청하여 옆에 있던 우물에 빠지고 말았어.”
“헉, 그래서 김씨는 어떻게 되었어요? 우물에 빠져서 죽었어요?”
“뒷이야기가 꽤나 궁금한 모양이로구나. 우물에 빠진 김씨는 박씨에게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면서 그동안 자신이 사과를 훔쳤다고 솔직하게 말을 했단다. 박씨는 김씨를 용서하고 우물에서 꺼내어 주었지. 그런데 박씨가 우물에서 김씨를 구해주자 마자 김씨의 태도가 별안간 달라졌단다. 목숨을 구해준 박씨에게 오늘 일을 마을사람들에게 말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박씨를 협박했지. 박씨는 무서운 마음에 알겠다고 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었단다. 그런데 마을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단다. 새벽녘이 되면 우물에서 김씨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어.
자기가 사과도둑이었고 목숨만 살려준다면 마을사람들에게 잘못을 빌겠다고 김씨가 우물에 빠졌을 때 말한 내용이었지.
우물에서 들려온 소리 때문에 김씨의 잘못이 온 동네방네 소문이 났고 김씨는 진정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잘못을 뉘우쳤고 박씨에게도 사과를 했단다.”
“이야. 역시 할머니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어요! 다음에도 또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주셔야 해요!”
이번 이야기도 꽤나 재미있던 모양이다. 다음 이야기는 무엇을 들려주어야 하나 오늘도 행복한 고민거리가 하나 늘었다.
파란 눈에 오뚝한 코. 검은 머리에 흰 피부를 가진 내 이름은 레이나이다. 아빠는 한국계 독일 사람이었고 엄마는 한국 사람이다. 나는 아빠를 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아빠가 있다. 새아빠. 새아빠는 재미교포 2세다.
엄마는 이국적인 취향을 가졌나보다.
어렸을 때 나는 누구보다 애국가를 힘차게 불렀고 누구보다 빨리 외웠다. 조회시간에 국기에 대한 경례도 열심히 했다. 그래서 운동회 날 개회식에 대표로 조회대에 올라 애국가 제창을 하기도 했다. 나는 내가 노래를 잘 불러서 그런 줄 알았으나 나중에 알기로는 신선한 문화적 느낌에서랄까 그래서 나를 쓴 모양이었다.
새아빠는 내게 친절하고 상냥하다. 항상 나를 존중해 주었고 내 앞에서 엄마와의 애정표현도 잘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난 새아빠가 엄마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엄마는 내가 친아빠에 대해 궁금해 하는지 안 궁금해 하는지도 묻지 않았다. 돌아가셨는지 일찍이 이혼을 하신건지조차도 모르고 지냈으니까. 내가 먼저 물어봤어야 하나 아니면 엄마가 먼저 말해줬어야 하나. 이건 마치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묻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다들 내가 우리나라 말을 능숙하게 하는 것에 대해 신기해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바보 같다고 생각했으나 아주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외국인이 영어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것같이 느껴졌을 테니까.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일 년에 한 번씩 남해로 나를 데려갔었다. 그곳에는 공교롭게도 미국마을 그리고 독일마을이 있었다.
그곳에는 아빠를 닮은 사람도 새아빠를 닮은 사람도 많았고 나는 그들속에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는 내가 열세 살이 되던 날 처음으로 친아빠 이야기를 해주었다. 친아빠는 참 멋있는 사람이었다고 했고 특히 오뚝한 코가 제일 멋있었다고 했다. 내가 아빠를 닮아서 다행이라고 하면서.
엄마는 나중에 내가 다 자라고 나면 이곳에 내려와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그러면 나는 짓궂게 미국마을에서 살 것인지 독일마을에서 살 것인지를 물었다. 엄마는 내 콧잔등을 가볍게 치며 다랭이 마을에서 농사지으면서 살겠다고 하기도 했다. 거짓말.
어렸을 적 나는 엄마와 외할머니가 싸우는 걸 몰래 엿본 기억이 있다. 할머니가 엄마에게 못된 소리를 하기에 엄마가 무엇을 잘못했나보다 생각을 하긴 했으나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친아빠가 아직 돌아가신 건 아닌가 보다 라는 일종의 정보만 얻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 정보를 듣고 난 후에도 나는 엄마에게 친아빠에 대한 유무를 확인하지 않았다. 친자식이 아빠를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음에도 나는 그것이 마치 엄마를 힘들게 하는 못된 짓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아빠라는 단어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처럼 쉽게 내뱉지 못하며 자라온 것도 있다. 그래서 인지 아니면 엄마가 다시 만난 사람도 외국인이어서 그런지 나는 아빠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않는 새아빠가 고마웠다.
나는 사실 엄마보다 새아빠와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내게 새아빠는 아빠가 보고 싶지 않느냐고 먼저 물었다. 나는 그저 새아빠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보고 싶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보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할까.
나는 엄마가 아빠와 왜 헤어졌는지 궁금했다. 언젠가 아빠를 만나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어디에 계신지 내가 만나볼 수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아빠에게.
내가 아빠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이 독일 사람이고 코가 오똑하며 예쁘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가끔 엄마 몰래 혼자 남해를 찾아오곤 한다. 독일 마을에 내가 알지 못하는 우리 아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흰 벽에 주황색 지붕을 한 어느 따뜻해 보이는 집에 나와 닮은 오뚝한 코를 가진 독일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언젠가 나와 닮은 외국 사람을 만나게 되면 아주 반가운 얼굴을 하고 손을 흔들어 줄 것이다. 이렇게 예쁘게 잘 자라고 있다고.
볕이 좋은 주말 오후에도 체육관은 기합소리와 땀 냄새로 그득하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가슴에 태극마크 하나씩 달고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 운동을 한다. 하나같이 종목들과 운동을 하는 이유는 다 다르지만 ‘국가대표’라는 직분은 같기에 오늘도 기합소리가 새어나온다. 그들은 힘이 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고 몸이 뒤틀리는 고통을 웃음으로 넘긴다. 4년의 기다림을 알기에 그들은 참고 또 참는다. 누군가는 메달이라는 상징물 혹은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큰 세계적 이슈로 보겠지만 그것은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도 나라의 미래일수도 또 다른 의미에서는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다 쓰러지겠어. 메달 따고 싶어 하는 맘은 나도 알겠는데 그래도 컨디션 조절이 제일 중요하다는 거 몰라?”
“나 메달 따려고 이러는 거 아니야.”
“메달 따려고 그러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몸을 힘들게 해. 좀 쉬었다 하자.”
한준은 몸에 땀이 비 오듯 흘러 운동복이 흠뻑 젖었다. 파트너 희진의 만류에 겨우 기구를 내려놓았다.
미지근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한준에게 희진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 때문에 그렇지?”
“무슨 소리야 그게.”
“한준이 너, 어머니 찾겠다고 그러는 거잖아. 메달 따서 당당하게 찾아뵈려고. 아니야?”
한준의 부모님은 한준이 12살이 되던 해에 각자의 삶을 살기로 하였고 한준은 아버지를 따라가야 했다. 그 이후로 한준은 어머니를 자주 볼 수 없었다. 20살이 되던 해에 국가대표로 선발되면서 태릉선수촌에 들어왔다. 그 이후로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한준은 메달을 따고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었을 때 당당한 모습으로 어머니를 만나러 가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주말이나 휴일에도 오로지 운동만 했다. 나라를 위해서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어머니 하나만을 위한 피땀 어린 노력이었다.
“배고프지 않아? 오늘은 주말이고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 우리 나가서 먹자. 외식하자 외식.”
생각 없다는 한준을 억지로 끌고 나왔다. 체육관을 벗어나기만 했을 뿐인데 왠지 공기마저 다르게 느껴졌다.
바깥바람을 만끽하며 걷는 희진과 달리 바닥만 보고 걷던 한준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 바로 앞에는 낡은 구두가 있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아주머니 한분이 눈물이 그렁한 채로 한준 앞에 서있었다. 서로 말을 주고받지 않았지만 한준의 어머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한준아.”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돌아가세요.”
“저기, 한준아. 밥. 밥은 먹었니? 안 먹었으면 점심만 같이 먹고 가면 안 될까?”
둘의 관계를 알아차린 희진이 순발력을 발휘해야 했던 순간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한준이 파트너 김희진이라고 합니다. 한준이 어머님이시죠?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헤헤. 아, 마침 저희도 점심 먹으러 나가려던 참인데 제가 오늘 운동스케쥴이 있었던 걸 깜빡했지 뭐에요? 그래서 그런데 두 분 이서 식사 하고 오시면 될 것 같은데…….”
“아. 그래요? 우리 한준이 파트너 분이세요? 반가워요. 같이 식사하면 좋은데.”
“아, 아닙니다. 저는 다음에요. 한준아, 밥 맛있게 먹고 와. 나 먼저 들어간다!”
몇 년 만에 본 어머니의 얼굴은 몰라보게 야위어 있었다. 잘 살고 계시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보니 더 늙고 초라해진 모습에 마음이 아픈 한준이었다.
“한준아. 엄마가 미안해.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운동하면 힘들 텐데. 뱃속 든든하게 채우고 운동해야지.”
“국수가 먹고 싶어요. 멸치국수.”
공릉동 국수거리에서도 한참을 들어온 곳에 몇 평 안 되는 작은 가게에 들어왔다. 가게가 8평 남짓한 공간이라 더욱 밀착해서 앉게 되었다. 멸치 국수 두 그릇에 김밥 한 줄을 시켰다.
“좀 더 근사하고 든든한 거 먹지, 국수는 배 금방 꺼지는데.”
“김밥하고 먹으면 괜찮아요. 그리고...”
한참을 머뭇거리던 한준은 뒷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언제 한 번 어머니랑 여기 와보고 싶었어요. 여기 국수가 옛날에 어머니가 해주던 거랑 비슷한 맛이 나서 가끔 혼자 와서 먹고 가고 그랬거든요.”
어머니의 눈물이 국수그릇으로 똑 떨어졌다. 그동안 혼자 이곳을 찾아왔을 한준이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듯했다.
한준은 이제 경기 전까지 운동에 전념한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경기 끝나면 엄마가 직접 끓여주는 국수 맛보러 가겠다는 말을 용기 내어 꺼냈다. 어머니를 정류장까지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한준의 귓가에는 후루룩 소리가 맴돌았다.
12월 31일. 오늘은 날씨가 제법 쌀쌀한걸 보니 비가 내린다면 눈으로 바뀔 것 같았다.
날씨가 흐리면 안 될 텐데 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차에 남자친구가 오후에 날 갠다는 희소식을 전했다.
사람들 마음속에도 연말이라는 뜬 구름이 가득 차있는 듯했다, 거리마다 사람들은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있었고 오늘이 세상 끝 마지막 날이라도 된 것처럼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했다. 특별히 어디를 가지 않는다고 해도 제야의 종소리는 들어야 한다며 종로 2가로 모여들 것이다. 사실 특별할 것 없이 지나가는 하루일뿐임에도 사람들은 굳이 무엇인가를 하며 추억의 액자를 못박으려했다. 언젠가는 잊힐 무심한 다짐들과 함께.
여자도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이번 남자친구와 처음 맞는 새해였기 때문에 여자는 더욱 들떠있었다. 여자는 아침부터 12월 31일의 코스를 짜기 시작했다. 오전에 만나서 간단히 브런치를 즐긴 뒤 점심은 좀 더 특별하게 도시락이 어떨까? 저녁은 정말 근사한 곳에서 칼질을 한 뒤 12시에 맞추어 종로로 가는 일정이었다. 친구들과의 여행에서도 이렇게 짜임새 있는 일정을 짜본적이 없던 그녀였다. 남자친구도 그녀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노력했다. 카페에 앉아 점점 맑아지는 하늘을 바라보던 남자는 여자에게 선뜻 제안을 하나 했다.
“오늘 우리 해돋이 보러갈까? 너랑 해 뜨는 거 보고 싶은데.”
“해? 음, 나 외박 안 되잖아. 너도 알면서. 우리 엄마 아빠 난리 나실걸.”
“그럼 새벽에라도 출발하면 되잖아. 응? 해돋이 보러가자.”
남자는 좀처럼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여자도 해돋이를 보러 가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새해라고 해서 구름떼처럼 몰려오는 사람들과 술 냄새인지 땀 냄새인지 뒤섞여 콧물은 주르륵 흐르고 몸을 오들오들 떨며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싶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소리소리 지르는 아저씨들 틈 사이에서 새해를 보내고 싶지 않아서였다. 여자는 코를 한번 훌쩍이며 ‘이따 상황 봐서’라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남긴 뒤 화제를 돌렸다.
여자의 짜임새 있던 일정대로 둘은 간단히 브런치를 즐긴 뒤 여자가 정성스럽게 싼 도시락까지 먹었다. 이제 남은 건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 종소리를 들으러 갈 것인지 해돋이를 보러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여자는 남자가 시간이 지나면 귀찮아 질 것이라고 생각했고 애국가를 통해서 나오는 일출도 볼만하다고 여길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쉽게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남자는 평소에 고집을 부리지 않는 성격이었기에 여자는 오늘 특별히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했다. 무슨 다짐을 얼마나 거창하게 하려고 해돋이까지 보러갈까 싶었다.
“좋아, 가자. 해보러. 말갛게 떠오르는 해, 보자구.”
“가기로 한 거야? 고마워. 담요랑 손난로도 준비했지.”
남자는 활짝 웃었다. 가지말자고 떼를 썼다면 남자가 많이 실망했겠다 생각했다. 담요랑 손난로까지 준비한 것을 보니 더욱 그러했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연신 하품을 하는 여자를 향해 남자는 눈 좀 붙이라고 했지만 여자는 무거운 눈꺼풀을 끔벅이며 시계를 들여다봤다.
오전 4시 43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남자는 곧 도착이라고 말했고 여자는 으응 이라고 대답했다.
예상대로 사람들은 많았다. 가족, 연인들로 저마다 들뜬 표정을 지었다. 해가 떠오를 때 무슨 다짐을 할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넌 해 뜰 때 무슨 다짐할거야? 담배는 안 피우니 금연은 아닐 테고, 다이어트? 아님 승진?”
“그런 거 말고 있어. 비밀이야. 안 알려준다고.”
“치, 우리사이에 비밀이 어디 있어. 빨리 이야기 해줘 응?”
여자가 남자에게 딱 붙어서 이야기를 할 때 저 너머에서 붉은 해가 비쳤다. 사람들은 웅성웅성하며 한 곳을 응시했다.
검고도 붉은 해를 보니 괜스레 경건한 마음까지 들었다.
“멋지다.”
쉿.
여자가 말을 하려는데 남자는 여자의 말을 막았다. 해는 이미 떠오르고 어스름히 새벽이 밝아왔다. 여자는 참았던 졸음이 몰려왔고 남자는 끝내 어떤 다짐 그리고 소원을 빌었는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여자의 손을 잡아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