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거리는 잠들지 않는다. 소란스러움이 당연시되는 이 거리의 밤은 더욱 찬란해진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건네는 자와 받는 자들은 거리의 소음을 즐기며 흘러가는 밤을 만끽하곤 한다. 신도시 건설이다 관광지 개발이다 말이 많은 송탄의 밤은 더욱 뜨거웠다. 거리 한복판에서 현주는 홍콩의 밤거리를 떠올렸다. 단 한 번도 홍콩을 다녀오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어쩐지 송탄의 거리는 홍콩의 밤거리를 떠올리게 했다.
띠링, 여동생 진주의 문자다. 언니, 올 때 닭강정 하나만 사다줘. 진주는 현주가 송탄쇼핑타운 근처에 가있을 때면 귀신같이 문자를 보냈다. 언제 한 번 쇼핑 겸 엄마심부름으로 중앙시장에 같이 나왔을 때 닭강정 한 번 맛보더니 때만 되면 그렇게 문자를 보낸다.
미군부대가 근처에 있어서 일까 다양한 언어가 섞이며 화장품이면 화장품, 옷가게면 옷가게가 줄지어 늘어서 있고 밤이면 먹거리 포장마차들이 저마다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를 풍긴다. 현주는 잠시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진주의 부탁대로 닭강정을 파는 작은 핑크색 포장마차로 갔다.
“어머, 또 왔어요? 오늘은 어떻게 줄까?”
“한 박스만 포장해주세요.”
“이거 조금만 먹으면서 기다려요. 금방 해줄게.”
아주머니는 친절했다. 기다리는 사람을 배려하는 얼굴과 말씨로 시식용 그릇에 닭강정 한 조각을 잘라주었다. 닭강정 하나를 조각내어 먹고 있는데 아주머니께서 말씀을 걸어왔다.
“우리 딸이 딱 아가씨만 한 나이인데. 매번 이렇게 찾아줘서 고맙고 반갑네. 우리 딸은 여기도 좋구만 꼭 그렇게 서울로 올라가서 놀더라고.”
“아무래도 서울이 더 볼 게 많고 살 것도 많으니까요.”
“그런가? 우리 딸이 자주 가는 데가 명동이랑 이태원이라는데 난 여기가 거기 하나 안 부러운 것 같은데 젊은 사람들 눈엔 또 다르고 그런가봐.”
“그렇죠 뭐. 사람도 많고…….”
나는 말끝을 흐렸다. 딱히 사람이 많은 것 말고는 특별히 그 두 곳보다 더 떨어지는 부분을 찾지 못해서였다. 물론 서울의 동대문이나 명동, 이태원이 트렌드의 중심으로 화려함과 번잡함이 물 흐르듯 흐르고 있을 테지만 어쩐지 나도 아주머니의 딸처럼 송탄관광특구에 대한 자부심은 특별하게 없었다. 그 옛날 관광특구로 선정될 때 크게 열린 행사에 관심을 가진 것 외에는 쇼핑을 위해 혹은 밤거리를 즐기기 위해 거리로 나온 적이 없었다.
닭강정 한 박스를 받아들고 좀 걷기로 했다. 낯선 글씨의 간판, 꼭 한번 먹어보겠다고 벼르고 별렀지만 아직 먹어보지 못한 미스리 햄버거, 촌스러운 듯하지만 나름대로 개성 있는 옷가게들 어쩐지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이 들었다. 집에서 불과 몇 분 거리에 나와 있음에도 이곳이 명동인지 이태원인지 아니면 홍콩의 거리 한복판인지 모를 정도였다.
여기저기에선 군복을 입은 미군들이 지나다녔다. 옛날 같았으면 괜스레 무서운 마음이 들어 옆으로 살짝 비켜 지나갔겠지만 오늘은 어쩐지 무섭다는 생각보다 훨씬 이 거리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닭강정을 팔던 아주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명동이랑 이태원 하나 안 부러운 것 같은데 거기나 여기나 외국인들 많고 예쁜 옷 많이 팔고 먹을 것도 많다고.’
얼마나 걸었는지 중앙시장 끝까지 와버렸다. 띠링, 동생의 문자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것을 그새를 못 참고 또 문자를 보냈나 하고 시계를 보니 벌써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있었다. 닭강정은 차갑게 식어있을테고 동생은 투정을 부릴 것이다. 나는 동생에게 답장을 보냈다. 아주 멀리서 사가느라 늦었다고, 언젠가 너도 데리고 와 주겠다고. 지금 바로 간다고.
도시의 거리는 잠들지 않았다. 소란스러움이 당연시되는 이 거리의 밤은 흐트러져 보이나 정돈되어 있었다. 거리 한복판에서 현주는 홍콩의 밤거리를 떠올렸다. 단 한 번도 홍콩을 다녀오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어쩐지 송탄의 거리는 홍콩의 밤거리를 떠올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