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애가 유치원에서 신선이라는 단어를 듣고 왔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신선이 뭐냐고 묻는다. 분명 유치원선생님에게도 똑 같이 신선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테고 선생님께서는 다정한 목소리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을 텐데 이 녀석은 내게 꼭 되묻는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하고는 마치 처음 듣는 다는 듯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모습에 최대한 친절히 대답해주려고 한다.
“신선은 말이야. 산신령알지? 그런 것처럼 상상 속 인물이야. 도를 닦으면서 인간 세계에서 유유자적하며….”
아이에게 말을 해주면서도 아차 싶었다. 아이는 유유자적이 뭐야? 도를 닦는 게 뭐야? 하며 이맘때 쯤 아이들이 그렇듯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로 퍼부어 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어쩐지 곰곰이 생각에 빠진 듯했다.
“빈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음, 신선은 왠지 좋은 것 같아서.”
역시 어린아이라도 감은 있는 듯했다.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 하는 삶만큼 매력적인 삶이 없다는 것을 그 짧은 이야기 속에서 캐치해 낸 듯했다.
“응, 빈이 말이 맞아. 신선은 아주 경치가 좋은 곳에서 자연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란다. 그래서 아주 경치가 멋진 곳에는 신선이 노닐다 간 곳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지.”
아이는 반은 알고 반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에게 신선이니 유유자적 하는 삶이니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나니 퇴근 후 유치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넥타이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앉아있는 신세가 어쩐지 처량해졌다. 풍류를 즐기며 유유자적하는 삶을 크게 동경하며 사는 것은 아니었지만 쉬는 것을 마다할 사람 없고 노는 것을 싫어할 사람도 없었다. 때마침 아내도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추고는 아이에게 오늘 하루에 대해 물었다. 아이는 당연히 엄마에게도 처음 듣는 것처럼 신선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나와 똑같거나 비슷한 이야기를 하겠지라며 넥타이를 푸는데 아내의 입에서는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빈이 저번에 아빠 엄마랑 무진정 갔다 온 거 기억나? 거기가 신선이 놀던 곳처럼 아름답다고 했었는데.”
“아! 맞아. 엄마랑 아빠랑 거기에서 사진 많이 찍었지!”
역시 엄마는 위대했다. 나는 아이의 눈높이는 고려하지 않은 백과사전같은 말만 늘어놓았는데 아내는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며 아이의 이해를 도왔다.
“응, 그러고 보니 지금쯤 무진정에 꽃도 피고 녹음이 푸르러 더없이 예쁘겠다. 봄은 이래서 좋아. 발길 닿는 곳 어디든 예쁘고 멋있잖아. 그래서 말인데 여보, 이번주 주말에 무진정 다녀올까? 저번에 갔을 때는 사람도 너무 많고 해서 제대로 만끽하지 못한 것 같아.”
이번주 주말이면 사회인 야구단에서 중요한 야구시합이 있는 날인데 차마 아내와 아이의 눈빛을 똑바로 보고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내 대답도 마저 듣지 않은 채 벌써 룰루랄라였다.
어쩔 수 없이 야구단의 중요 경기에 참석 할 수 없다는 비보를 알린 채 아내와 아이의 손을 잡고 무진정으로 달렸다.
와아. 아내와 아이의 입에서는 동시에 감탄이 흘러나왔다. 아름다운 연못에 소박하게 자리한 정자가 기품 있게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이야. 무진정 무진장 아름답네.”
아내는 어쩐지 썰렁한 농담까지 곁들였다. 사실 주말을 손꼽아 기다린 야구 시합을 제쳐두고 온 것이라 입이 삐죽 나와 있던 차인데 무진정의 멋들어진 경치와 아내와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정말로 신선이 풍류를 즐기다 간 것처럼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는 무진정 앞에 서니 신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선 시대 문신 정도는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빠, 아빠가 신선 같아.”
빈이는 저 멀리서 달려오며 나보고 신선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순간 그렇게 늙어보이나 라는 생각이 들다가 아이의 함박웃음에 나도 따라 웃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무진정 무진장 아름답다 정말.”
아내와 나는 오랜 시간동안 한 곳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