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왔어. 짜잔! 우리아들이 좋아하는 호두과자!”
“야호! 신난다. 우리 엄마 최고!”
“우리 민수 퇴원하면 엄마가 호두과자 더 많이 사줄게. 혼자 심심하고 무서웠을 텐데도 잘 참아줘서 고마워. 사랑해 우리 아들!”
“정말? 정말이지? 수술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호두과자 많이 먹을 날도 얼마 안남은거네? 맞지? 응?”
“그래, 우리 아들 똑똑하네.”
무균실 밖에서 간호사가 나를 부른다. 담당 전문의의 호출이라고 했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가망이 없다니. 우리 아들이 이렇게 예쁘고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왜.’
담담한 어조로 말하는 의사의 말에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수술이 며칠 안 남았는데 도대체 왜이러시냐고 무릎을 꿇고 빌어보기도 했다. 의사는 지나치게 이성적인 말만을 내뱉었다. 의사에게 너도 자식 키울 것 아니냐며 악을 질러보았지만 의사는 이해한다는 말만 했을 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를 가슴에 묻어야했다.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이민을 가자고 했고 남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남편은 아이를 하나 더 갖자고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한국을 떠나왔어도 천사 같이 웃어주던, 아프고 힘들었을 텐데도 울지말라며 손을 잡아주던 천사 같은 민수의 모습이 더욱 생생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을 떠나온 지 어느덧 40여년이 흘렀다. 여전히 나는 민수를 그리워했지만 눈물짓지는 않았다. 남편과도 민수의 생일날 이외에는 민수에 대한 이야기를 굳이 나누려하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점점 기억 속에 무뎌져 있었다.
남편의 사업 때문에 이민을 떠난 후 40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분주한 사람들의 발소리 그리고 쾌청한 하늘 무엇보다 한국어로 이야기 하는 사람들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인 듯 했다. ‘변한 것이 없구나. 나 밖에’ 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런데 어쩐지 주위에 호두과자 전문점이 눈에 띄었다.
‘호두과자. 우리 민수가 참 좋아했는데. 퇴원하면 양손 가득 넘치도록 사준다고 약속했는데.’ 40여년만의 기억이 파르르 떨렸다.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했고 민수와 이별하던 날 그리고 현재의 시간이 맞물리는 것만 같았다.
딸랑 거리는 현관문 종소리가 울리고 친절해 보이는 점원에서 호두과자 한 봉지를 주문했다. 갓 담겨 나온 호두과자는 따뜻했다. “우리 민수 손처럼 따뜻하네.”내가 봉지를 받아들며 속에 있던 혼잣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한가로운 공원에 한참을 앉아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얼마나 뛰어놀았는지 머리가 땀으로 다 젖도록 뛰어놀던 아이를 아이의 엄마가 찾으러 왔다.
“이제 그만 가자. 배 안고파? 점심도 안 먹고 이렇게 뛰어놀게.”
“배고파. 엄마, 근데 나 저기 할머니가 들고 있는 호두과자 먹고 싶어. 나도 사다줘. 응? 엄마~”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무슨 호두과자야. 얼른 가자. 엄마 지갑도 안가지고 나왔어.”
“싫어, 나 호두과자, 호두과자~”
엄마에게 떼를 쓰는 아이를 보니 우리 민수가 더욱 아련했다. 아이 엄마에게로가 먹으려고 샀는데 못 먹게 되었다며 괜찮으니 아이를 주어도 된다고, 원래 이맘때 아이들은 단 것을 좋아하나보다고 호두과자를 건넸다. 아이엄마는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아이의 머리를 콩하고 쥐어박았다.
그나저나 금방 온다고 하던 남편이 오지 않는다. 다시금 그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데 어디에서 따뜻하고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남편이다. 남편의 손에는 따뜻한 호두과자가 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