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만년의 무게를 담고 오랜 세월의 흐름은 무상한 듯 고요히 흐르는 푸른 한강 위에 돛단배가 유유히 흐른다. 노를 젓는 사공도 없이 뉘엿뉘엿 흘러가는 강물 따라 흘러내려 간다. 저 멀리 보이는 포구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웅성웅성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푸른 한강에서는 한가롭게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고 있다. 강나루에는 신록이 짙어져 버드나무가 살랑살랑 흔들리고 아차산의 푸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나는 아차산에 올라 광나루를 내려다본다. 언젠가는 이란 경치를 벗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작은 텃밭에서 상추, 고추, 가지 등을 가꾸면서 낚싯대 하나 등에 메고 패랭이 하나 쓰고 그저 느긋하게 낚시를 즐기고 싶다. 광나루에 앉아 낚시 던져놓고 그저 여유롭게 낮잠이나 자는 삶이 얼마나 한가하지만 여유로울까.
나는 현재의 최고 명문가인 안동 김씨의 후원을 받고 있다. 나는 그를 위해 그의 집인 청풍계(淸風溪)를 여러 번 그려줬다. 내가 그린 청풍계 그림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사람들은 신선의 솜씨라며 나를 칭송한다. 여기에 성상께서도 나를 후원해 주고 계신다. 나는 성상을 세제(世弟) 시절부터 그림 스승이었을 정도다. 하지만 나의 예술혼은 채워지지 않는다.
수십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그림을 본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어찌 이런 그림을 단 3일 만에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사람의 솜씨가 아니다.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자신이 사는 곳을 그려냈구나.”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마음을 뺏기고 어찌하면 나 역시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수없이 고민하고 수없이 그리기를 수십 년. 수백 장의 화선지에 검은 묵과 종이의 여백을 살려 수없이 그리고 찢기를 반복하고 있다.
내가 이곳 광나루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아차산과 한강이 어우러지는 아리따운 경치와 함께 이곳은 권문세가들의 별장이 있어 자연과 인간의 건축물이 잘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더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모습과 우리의 시대를 한 폭의 그림에 그리고 싶다. 마치 신선이 사는 몽유도원도처럼...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그리고 내가 사는 현재를 그리고 싶을 뿐이다. 아차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나루터에 묶인 두어 척 나룻배와 한강을 가로질러 쉴 새 없이 다니는 돛단배, 그리고 그 안에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선비들이 가득 타고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며 풍류를 즐기고 있다. 나는 그리고 싶다. 우리가 사는 이곳을 신선이 노니는 곳처럼 말이다.
그렇게 자연을 관찰하고 연구해 나는 전통적 수묵화법이나 채색화를 나 나름대로 해석해 나만의 필묵법을 개발했다. 세간 사람들은 수많은 그림을 그렸고 내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는 선비나 직업 화가들이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겸재파 화법이라 부른다고 한다.
나는 이제 나만의 화법으로 '광진'을 그리고 있다. 광진은 도성 안에서 살곶이다리를 거쳐 광진길을 따라 이르게 되는 강나루로, 여기서 배를 타야 강 건너 삼전도로 갈 수 있다. 이상향의 존재하지 않는 산수를 그리는 것이 아닌 실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산수를 하나의 붓으로 백색 화폭에 담아 꿈을 꾸는 것 같은 환상을 자아내고 싶을 뿐이다. 그것의 나의 ‘광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