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소리를 듣지 못했다. 완전히 지각이었다. 사장님의 욕설 섞인 호통을 들으며, 고개를 숙여 잘못했다고 빌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지각이었다. 나는 남들보다 늦은 출발선에 서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벌써 육 개월 전에 캠퍼스에서 봄을 맞았다. 나는 아직도 내가 가야 할 길로 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외동아들인 내가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기를 원하고 계셨고, 나도 오래 전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수도권의 경영학과에 가기 위해 성적을 맞추면서도,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정답은 당연히 ‘아니오.’였다. 하루에 두세 시간은 꼭 그림을 그리는 데 할애하는 내게는 벌써 수십 권의 드로잉북이 있었다. 내가 미술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그림쟁이에게 대 줄 돈은 한 푼도 없다며 화를 내셨다.
아버지와 크게 싸운 나는 그대로 집을 나왔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한 뒤, 아르바이트 장소 근처의 고시원에 자리를 잡았다. 스무 살. 나는 아직 어렸고, 앞으로의 생활 문제에 대해서도 두려움이 앞섰다. 잘리지 않기 위해 사장님의 온갖 뒤치다꺼리까지 다 해결하며 사방팔방 뛰어 다녀도 소용이 없었다. 최저 시급도 챙겨 주지 않는 월급으로 밥값과 방값을 해결한 뒤 남는 돈은 오십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이렇게 무작정 돈을 번다고 해서 대학에 갈 수 있을까. 등록금만 번다고 해서 미대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미술학원을 다녀도 모자랄 시간에 돈을 벌고 있어도 되는 것일까. 날이 갈수록 불안해지기만 할 뿐, 구체적인 방향이나 해결책이 없었다.
일주일에 하루 밖에 되지 않는 휴일, 나는 기분 전환을 위해 인근의 공원으로 나섰다. 고시원 주인에게 물어보고 나선 길이라 어떤 곳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알려준 길대로 찾아와 보니 알록달록한 조형물이 늘어 서 있는 것이 내 취향은 전혀 아니었다. 그대로 돌아서려는데 ‘나비 공원’이라는 글자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비. 봄에 날개를 펴는 나비. 나는 나비를 그리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여린 날개로 나폴 나폴 날고 있는 것을 보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초등학생 때 우연히 번데기에서 부화하는 나비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따스한 봄볕에 날개를 말리는 나비의 모습을 실제로 보고도 나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내가 처음 그리기 시작한 그림도 나비였다.
나는 홀린 듯이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나비 장식이 된 전등, 나비 날개가 달린 벤치, 나비 모양의 풍향계와 나비 모양의 거대한 조형물들. 잠자리가 날아다니는 계절에 나비가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포기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때, 나비생태관이라고 적힌 푯말이 보였다. 마지막 희망을 안고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란 돔형 온실의 모양을 한 나비생태관은 작은 식물원처럼 꾸며져 있었다. 순간, 제비나비 한 마리가 눈앞을 스쳐 날아갔다. 자세히 보니 꽃인 줄 알았던 것들이 나비였다. 꽃나무 가지 위에 나비들이 앉아서 날개를 까닥이고 있었다. 나는 드로잉북을 꺼내는 것도 잊고 한참동안 나비를 구경하고 있었다. 내가 보고 있던 호랑나비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나비는 꽃잎처럼 팔랑이며 조금씩 더 높게 날았다. 봄에 보는 나비만큼이나 가을에 보는 나비도 아름다웠다.
나비를 따라 시선을 옮겨가니 온실 천장을 통해 하늘이 보였다. 햇살에 눈이 찡하고 아파왔다. 두 손으로 눈을 감싸 쥐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나비는, 언제 날아도 다 같은 나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