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김새로 판단하면 안 돼!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흉측한 생김새 때문에 쉽게 접하기 힘든 생선, 아구. 지금은 아구 요리를 취급하는 곳이 많지만, 예전에는 흉측한 이빨에 배만 불룩하게 나온 아구가 그물에 걸리면 다시 바다로 텀벙하고 던져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생긴 아구의 별칭이 바로 ‘물텀벙’입니다. 인천 지역에서는 아직도 이 오래된 이름으로 아구를 부르고 있다고 하는데요, 미추홀구에는 ‘물텀벙 골목’까지 조성되어 있을 정도로 아구 요리를 별미로 취급한다고 합니다. <트래블아이>가 드리는 오늘의 미션, ‘물텀벙 요리를 배워라!’입니다.
미추홀구 용현동의 물텀벙 거리는 제물포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찾을 수 있는 곳. 선창에 내려놓아도 사 가는 이가 없던 물텀벙이 30여 년 전 부터 새롭게 태어났다.
“위를 좀 봐! 물텀벙 특색음식거리라는 간판이 있어. 여기가 바로 아구 거리, 물텀벙 거리구나. 골목 안으로 보이는 음식점들에 모두 물텀벙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어.”
“생각할수록 재미있는 이름이야. 외모는 흉측하지만 맛은 정말 최고지. 오독오독 탄력 있는 물렁뼈와 부드러운 속살의 조화가 매력 있지 않니? 오늘 배울 물텀벙 요리가 기대 돼.”
다른 지역의 척 보기에도 빛깔 고운 음식과는 거리가 먼 물텀벙 거리. 대체 이곳은 어떤 이유로 물텀벙을 대표 별미로 삼게 되었을까?
“용현동에 몰려 있는 포장마차 때문이지 뭐. 거기는 하역 노동자들이 많이 모이던 곳인데, 그 사람들이 이 값싸고 못생긴 물텀벙을 안주로 많이 먹었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생선인지라 값도 싸고, 물텀벙으로 끓여낸 탕의 시원한 국물 맛이 술안주로는 일품이니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 셈이지 않겠어?”
아구 요리로 유명한 곳은 경상남도 마산과 전라북도 군산, 그리고 인천 남구. 이 세 지역에서는 모두 다른 방법으로 아구를 요리한다?
“어디 보자. 마산에서는 말린 물텀벙을 다시 물에 불려 쪄 먹거나, 콩나물이랑 미나리와 함께 볶지. 군산에서는 된장 국물에 생 물텀벙을 졸인 다음에 콩나물 대신에 미나리랑 부추, 양파를 얹고 말이야."
" 그리고 우리 인천에서는 생 물텀벙으로 찜을 하고 말이야. 여기선 특히 복지리보다 더 칼칼하고 담백한 아구맑은탕이 대표 음식이지.”
아구맑은탕은 지리라는 말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맑은 생선국을 가리키는 말인 지리는 일본어로, 순화되어야 할 용어 중 하나라는 사실을 기억해 두자!
“콧등에 땀이 맺히도록 맵게 해서 먹는 물텀벙찜도 맛있지만, 맑은 국물을 끓여 먹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별미지. 날씨가 찬 날에는 맑은 국물이 속을 아주 환하게 해 주거든."
" 이 맑은탕의 맛을 좌우하는 육수는 다시마, 북어 머리, 멸치를 넣고 우리는데, 건져내는 시간에 따라 육수의 맛이 달라져.”
아구찜을 파는 곳은 많아도, 아구맑은탕을 파는 곳은 흔치 않다. 아구맑은탕을 배우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 짚고 넘어가 볼까?
“두말 할 것 없이 싱싱한 물텀벙이지 뭐. 요즘엔 냉동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보다는 역시 얼리지 않은 놈이 맛있어. 500g 정도면 딱 2인분 정도 될 텐데, 흐르는 물에 물텀벙을 잘 씻어주기만 하면 돼."
"비린내를 빼고 싶으면 소주에 담궈 두고. 나머지 재료는 콩나물이랑 미나리, 파, 양파, 무, 매운 고추 정도면 충분할 테고 말이야.”
속이 뻥 뚫리는 아구찜은 그 맛을 보면 가히 인천의 별미라 할 만하다. 이 맛에 뭔가 남다른 비결이 있을 것 같은데.
“이 맛에는 어떤 비밀재료가 들어가기에 이렇게 중독성이 있는 거죠?” “우리는 해물 재료를 전부 인천연안부두에서 직접 가져와요. 물텀벙부터 낙지나 조개류도 모두 살아있는 생물로.”
“쫄깃쫄깃하고 부드러운 물텀벙 살은 바로 인천 앞바다의 살아있는 맛이었군요!”
아구찜을 다 먹고 나면, 볶음밥을 주문해서 볶아 먹을 수 도 있다. 콩나물이 듬뿍 들어간 매운 아구찜과는 또 다른 별미로 꼽히는 볶음밥도 빼놓을 수 없다.
“마지막에 먹는 이 볶음밥은 꼬들꼬들 한 밥알이 입안에 굴러다녀 맛의 재미를 주지 않아? 안 먹고 갔으면 꽤 섭섭할 뻔했지.”
“정말~ 다음에 오면 탕도 한번 먹어보자. 좋은 재료만 넣었대. 푹 우린 육수에 싱싱한 물텀벙을 쓰는 거지.”
물텀벙에는 비타민 B2와 콜라겐이 풍부해 피부 미용과 노화 예방에 아주 좋다. DHA 성분이 풍부하여 두뇌 발달에도 좋으니, 알고 먹으면 더 맛있지 않을까?
“또 이 물텀벙에 포함된 비타민은 체내 흡수가 잘 되고 필수 아미노산도 풍부해서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기도 하지. 이게 생긴 건 이렇게 생겼어도, 여러모로 좋은 생선이야.”
“매콤하면서도 깔끔한 국물 맛이 일품이네요. 뜨거운 국물에 담백한 물텀벙이 살 한 점, 그리고 아삭한 콩나물이 더해지니 정말 맛있어요. 여기, 밥 한 그릇만 더 주시겠어요?”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혀 질 것 같지 않은 이름, 물텀벙. 척 보기에도 흉측하게 생긴 아구지만 물텀벙이라는 귀여운 이름으로 부르니 조금은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제 물텀벙은 ‘물에 버린다’는 뜻을 벗어나, 물텀벙이라는 어감에서 오는 이 친숙함을 강조하기 위한 애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인천에서 별미를 찾으신다면, 인천의 대표 별미를 맛볼 수 있는 용현동 물텀벙 거리에서 시원한 아구지리탕은 어떠신가요?
바람을 타고 자연을 느끼는 산소100리길
- 강원도 화천군 -
화천을 떠올리면 가장먼저 '물의 나라'가 떠오릅니다. 물이 맑고 공기가 좋아 산자수명(山紫水明)의 고장이라는 말이 어색하지가 않은 것 아닐까요? 화천으로의 여행에는 물이 빠질 수 없습니다. 흙길을 걷다 출렁거리는 다리 위를 건너고 강변길을 거닐며 북한강의 아름다움에 취하는 산소길. 자연 그대로의 공기에 생각까지 맑아지는 산소길을 지나다보면 세상 시름과 근심이 강물과 함께 흘러가고 온몸에 맑음이 가득 차는 오묘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산소길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라’
얼마나 공기가 맑으면 산소길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벌써부터 맑은 공기에 온 몸이 상쾌하다. 이름부터 청명한 산소길에서는 소담한 풍경까지 만날 수 있다는데?
“숲으로 들어오니 벌써부터 공기가 다른 것 같아.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셔 볼까?”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은데요?” “자칫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지만, 자연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맡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몸소 느낄 수 있을 거야.”
산소길의 시작은 흙길부터가 시작이다. 자연그대로의 식물들과 흙이 주는 따뜻함까지 느낄 수 있어 원시림에 온 듯한 느낌까지 받을 수 있다.
“바닥이 흙으로 깔려있으니 조심하렴. 나뭇가지가 머리위로 지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푯말이 보이지?"
"이 길은 상급자 코스이니 흙길은 걸으면서 지나자보자꾸나. 이런 흙길을 얼마 만에 가보는 지 모르겠구나. 흙의 따뜻함을 조금 더 느껴보기 위해서 걸어보는 것도 좋은데?”
흙길에서는 특별한 친구를 만날 수 있다. 야생화와 당귀, 오미자를 비롯한 각종 산나물들이 반가운 듯 조그마한 얼굴을 내밀고 웃는다. 그 웃음이 예뻐 따라 웃어본다.
“아빠, 여기 좀 보세요. 꽃 들이 옹기종기 피어있네요. 야생화일까요?”
“그런 것 같은데? 천천히 흙길로 걷다보니 뜻밖에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구나. 보자, 야생화도 보이고 각종 산나물도 보이네? 당귀도 보이고 오미자도 보이고. 여기 보이는 나무 꼭대기에 달린 것이 바로 산다래란다.”
흙길을 지나 숲길을 만나니 어느새 물소리가 들린다. 강이 보여서일까? 비로소 마음 한 편이 놓인다.
“야생화를 보다보니 어느새 흙길이 끝났어요. 이제 자전거로 씽씽 달릴 수 있겠는데요?”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기분은 꽤 상쾌하겠지? 자, 이제 힘차게 페달을 밟아볼까?”
“여기 보이는 강이 북한강이란다. 자전거에 몸을 맡기고 시원하게 내달리기 가장 좋은 구간이지.”
1945년에 만들어졌다는 꺼먹다리는 다리 상판을 검은색 타르로 칠하면서 얻어졌다. 수많은 사연이 깃든 낡음은 당시 총성이 앗아간 많은 이들의 슬픔이 묻어있는 듯하다.
“지금 우리 앞에 보이는 저 다리 이름이 꺼먹다리란다. 6.25전쟁 당시 포탄과 총알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 보이지? 남북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가슴 아픈 다리란다."
"지금은 많은 낡아있지만 여전히 후들거리는 다리로 그 아픔의 세월을 견뎌오고 있다니 왠지 가슴이 먹먹해 지는 걸?”
다리를 지나면 곧 이구가 고개가 나온다. 언덕의 경사가 심해 자전거를 타고 가지 못하면 자전거를 머리에 이고 가라고 해서 붙여진 재미있는 이름이다.
“아빠. 여기 좀 보세요. 여기가 이구가 고개래요. 이름이 참 재미있어요.”
“여기는 언덕 경사가 높은 숲길 입구인가 보다. 그래서 자전거를 들고 걸어가라고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우리도 머리에 이고 가볼까?” “전 그냥 끌고 가는 게 좋겠어요.”
산소 100리길의 백미, 숲으로 다리다. 강물의 흔들림이 온 몸으로 느껴지는 통통다리는 강물에 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 다리는 숲길의 시작을 알리는 다리라 숲으로 다리라고 칼의 노래를 쓴 작가 김훈 선생님이 붙여주셨다고 하는구나."
"사실 이 다리는 콘크리트로 만든 교각이 아니라 강물 위에 푼톤이라는 목재를 사용해서 만든 다리란다. 그래서 강물의 바닥이 붕 뜬 상태이지. 그래서 페달을 밟을 때 마다 출렁거리는 것이 물에 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이지.”
물의 아름다운 정취에 그만 마음이 뺏겨 한동안은 서로 아무 말이 없다. 그저 북한강에 흐르는 산천어가 보일까 물만 덩그러니 바라볼 뿐이다.
“힘차게 페달을 밟고 오니 벌써 길의 끝이 보이네요. 왠지 아쉬운 것 같아요.”
“그럼 조금만 천천히 가볼까? 경치도 구경하고 말이야. 저기 강물에 산천어와 수달이 있을까?” “뭐가 보이는 것 같은데요? 뭐가 보이는지는 다음에 또 오면 말씀드릴게요!”
흙의 따스함을 느끼고 바람으로 온 몸을 씻어내며 산소로 힐링하는 화천여행 어떠셨나요? 강원 산소 300리길이나 다른 걷기 좋은 길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화천 산소 100리길은 여타 다른 길보다 독특하고 오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길에서 만난 자연과 역사 그리고 산소의 아름다움까지. 화천의 매력을 한곳에 가득담은 산소 100리길은 건강함을 만나고 자연과 함께 더불어 숨 쉬는 체험을 하기 좋은 곳입니다. 물의 나라 화천에서 즐기는 또 다른 자연과의 만남, 산소길에서부터 시작해보세요.
황금닭의 전설이 내려오는 집
- 경기도 시흥시 -
요즘 많은 사람들이 전통가옥이나 한옥마을을 찾곤 합니다. 아마 분주한 일상을 살아가던 현대인들에게 고즈넉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다가오는 것 때문일 것입니다. 경기도 시흥시에도 유명한 전통가옥이 하나 있는데요. 시흥시에서 마지막으로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전통가옥이라 더욱 그 가치가 높습니다. 특별한 전설까지 전해져 내려와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 곳인데요, 그래서 제안하는 <트래블아이>의 오늘의 미션은 ‘생금집에서 선조들이 전하는 삶의 교훈 얻고 오기’입니다.
컨테이너 박스들이 놓여 있는 곳 끝에 시흥시 향토유적 제7호로 지정된 '생금집' 나온다. 생금집이라는 이름에서 이 전통가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어서, 황금닭 전설 이야기를 들려줘. 궁금해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 “조선조 말엽에 김창관이라는 사람이 마을에서 10여리 떨어진 곳에 나무를 하러 갔는데 생금우물에 닭 한마리가 있던 거지."
"그래서 곱게 싸 집 골방 반닫이에 넣어두는데 닭털 하나가 떨어져 나온 거야. 그 색이 하도 묘연해서 금방으로 가보니 황금이라는 게 아니겠어?”
모두가 황금닭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운다. 서양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있다면 생급집에는 황금알은 낳는 닭이 있다.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래서 얼른 집으로 돌아가 반닫이를 열어 보았는데 닭이 모두 황금으로 변해있었고 닭이 낳은 알들도 황금으로 변해서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 거야."
"그런데도 사치하지 않고 살림을 아끼면서 검소하게 살았다고 해. 열심히 일하고 아씨면 누구든 부자가 된다면서. 그래서 생금집이라는 댁호를 얻은 거지.”
황금알을 낳는 닭 이야기에는 교훈이 담겨있다. 전통가옥에서 교훈까지 얻어가니 삶의 화살표가 그려지는 것 같다.
“아,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 거야?”
“그렇지 않아. 그 소문을 듣고 부부의 딸이 찾아 왔는데 긴 추궁 끝에 황금닭의 비밀을 듣게 되고 딸은 반닫이에서 닭을 꺼내어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어. 그런데 닭이 돌로 변해있던 것이지. 그 후론 다시 황금으로 변하지 않았다고 해.”
금녕 김씨 자손이 12대째 세거하던 곳으로 팔작지붕 집으로 안방과 대청, 부엌과 건넌방, 바깥채로 이루어져 있다, 넓은 대청마루에 앉아서 일상의 고민을 잠시 내려놓는다.
“재미도 있으면서 삶의 교훈도 담고 있는 전설이었구나! 어쩐지 고택에서 들으니 더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 같다. 이제 집안 좀 살펴볼까?”
“용마루가 'ㄱ'자를 이루고 있고 규모도 꽤 큰 걸 보니 부농계층의 집안이었던 같아.” “그래 맞아. 집안 곳곳이나 뒤뜰에 있는 장독들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던 집안인 것 같아.”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형태를 지닌 생금집은 집안 곳곳 당시 생활양식이나 풍습까지 엿볼 수 있다는데?
“안채 12칸에 바깥채가 6칸인 이 가옥은 1913년에 개축되었는데 조금 낡긴 했어도 현재도 당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 "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하라는 이야기에 맞게 검소하고 절제된 양식이 엿보이는 것 같아. 그리고 바닷가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상이 반영되었다고 하는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볏짚으로 만든 작품들이 집안 곳곳 놓여있다. 그밖에도 고무신이며 옛날 물건들이 전통가옥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껏 돋우고 있다.
“난 가옥구조보다도 여기 놓여있는 많은 짚공예에 눈길이 가. 송아지 모형이나 사람을 닮은 인형 같기도 한데, 참 솜씨가 좋다.”
“그러네. 자칫 쓸쓸하거나 썰렁할 수 있는 옛집에 이런 아기자기한 공예품이 있어서 외롭지 않은 것 같아. 무엇보다 짚으로 만들어져서 분위기가 너무 잘 어울려.”
옛 생활모습을 갖춘 가옥이나 문화유산이 점점 사라져 가는 요즘, 생금집은 시흥시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전통 가옥이다. 유일하게 남은 초가집에서 우린 무엇을 느낄 수 있나?
“그런데 시흥에 또 다른 초가집이나 옛 고택이 있을까?” “아니, 안타깝게도 여기 이 생금집이 시흥시에 유일하게 남은 초가집이라고 해. 그래서 더욱 보존해야 할 가치와 의미가 크지.”
“어쩐지 유일하게 남은 곳에서 교훈까지 얻고 가니 다가오는 의미가 더 큰 것 같아.”
향토문화유적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은 생금집을 다녀온 후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황금닭이 전하는 전설과 함께 문화유적 보존에 대한 깊은 뜻도 헤아려본다.
“그냥 옛집이나 고택에 들른다는 마음 혹은 이야기를 듣기위한 호기심 정도로 찾은 것 같은데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이라 새로운 것 같아.”
“그래, 나도 향토문화유적에 대한 관심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교훈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어서 뜻깊고.”
생금집 전설 혹은 황금닭의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고 하여 많은 이들이 찾는 반면 예 생활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리가 허술하여 그에 따른 말들도 참 많습니다. 이에 생금집은 학생들을 초청하여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문화의 계승을 위해 초가지붕을 새로 올리며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느끼는 시간도 가지고 있습니다. 전통문화의 소중함과 고즈넉한 느림의 미학을 얻고 싶다면 생금집에서 황금닭이 들려주는 이야기 한 구절 듣고 가보는 건 어떨까요?
옛 담장 걸으며 고가 속으로
- 경상남도 거창군 -
경남 거창의 거창신씨 집성촌 황산마을은 경사가 조금 있는 위천면 평지에 자리한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수백 년 전 지어진 한옥들이 들어차 고풍이 넘치고, 운치 있는 옛 돌담을 감상하는 맛도 일품입니다. 게다가, 누각 처마 밑으로 펼쳐진 수승대를 보면 은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풍류시인이 될 것 같습니다. 아기자기한 담벼락을 따라가며 듣는 이야기에 하루가 부족할 판이라 이곳은 한옥 민박체험 시설도 잘 갖추고 있습니다. ‘황산마을에 머물며 예스러움을 엿들어라!’ 이것이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방문객을 먼저 반기는 것은 바로 담장이다. 흙과 돌 만든 토석담인데, 이때 담장 아랫부분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신기한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된다.
“여기를 봐! 흙 메우기 없이 돌만 얹어놓았어. 태풍이라도 오면 무너지지 않을까?”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 비가 많은 거창의 지리적 특성을 염두에 둔 조치라고.”
“아~ 한번씩 마당을 물바다로 바꾸는 비가 빠져나갈 일종의 배수구인 셈이로구나.” “맞아. 이걸 메쌓기라고 부르지.”
담장은 대체로 무늬 없이 담백하다. 하지만 택호가 대과댁인 고가의 담장을 보면 유독 장식이 가미되어 눈길이 간다.
“이 마을의 첫인상은 단언컨대 실망스러워. 1㎞가 넘는 이 길이에서 토석담 또한 등록문화재라지만 꽤 단조롭고 말이지.”
“수키와와 암키와로 꽃잎을 표현한 이곳 꽃무늬 담장을 봐봐. 문화해설사 말로는, 과거 전 문화재청장이 이 마을을 돌다 꽃무늬를 발견하곤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했다지.”
황산마을은 담장 높이는 대체로 낮은 편이다. 침범을 허용하지 않는 도시 담벼락 대신 ‘너와 나의 어울림’을 실천해온 것이다.
“이 담벼락만 봐도, 공간을 구획하고 최소한의 사생활만 보호할 뿐 단절을 철저히 피한 구조야. 단순히 고택들이 모인 마을이 아니라 친족 공동체로 엮여 있기에 가능하겠지?”
“옆집에 아재가 살고, 그 뒷집에 조카가 있어 애써 차단용 울타리를 필요로 하지 않았겠지. 손 시린 바람에도 이 길목에서만큼은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니?”
지금은 민박촌으로 바뀌어 언제든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는 황산마을은 1540년 요수 신권 선생이 터를 잡은 거창 신(愼)씨의 집성촌이다.
“어림잡아 한옥 수가 60~70채쯤 되겠어.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 당시 건립된 집들이 많아.”
“하지만 여기가 18세기 중엽 황고 신수이 선생이 입향하면서 번성해온 집성촌이라는 사실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그래서 그런가, 이 마을의 역사가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더 많은 것들이 궁금해져.”
특히 가장 잘 보존된 집 역시도 신씨 고가가 꼽힌다. 마을 중앙에 위치한 이 고택은 500여 년 역사 외에도 눈이 휘둥글해질 만한 자랑거리가 있다.
“안채,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솟을대문 등 이곳 목조건축물을 들여다보면 집 주인의 부와 권위, 경제력을 이해하게 되지.”
“맞아. 하지만 이 집의 숨은 내력은 따로 알아봐야 해. 여기서 13대 요수 신권의 손자 신당이 6형제를 두었는데, 그 후손들 가운데 절반이 거물급 인사라는 거야. 정말 대단하지?”
거북바위를 닮은 수승대로 발걸음을 떼기가 무섭게 시간이 멈춘다. 저 멀리 요수정도 시야를 막는 자태가 드러날 것이다.
“노송 가지는 묵묵히 겨울과 싸우고, 얼음 낀 계곡도 지지 않고 물소리로 호응하고…. 거북바위 사면엔 암반의 기운을 받으려는 이름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구나.”
“거북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쪽을 봐봐. 뻥 뚫린 굴이 보이니? 스승이 햇빛을 피해 여기에 앉아 후학의 글을 심사했다고 전해지지.”
수승대로 개명한 것은 퇴계 이황 선생의 시 한 수 때문이다. 오언율시를 전해 받은 요수 선생이 그 시의 글귀를 거북바위에 새기고 이름을 바꿨다는데, 어떤 사연일까?
“‘수승으로 이름을 새로 바꾸니, 봄을 만난 경치 더욱 아름답겠네…수승을 찾아 구경하지 못했으니 속으로 상상만 늘어가누나’…. 이게 바로 오언율시인가 보군.”
“퇴계 선생이 장인 생일잔치 참석차 거창에 머물다 조정의 부름을 받고 미처 수승대를 찾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을 이 시에 담은 거야.”
수승대로 개명한 것은 퇴계 이황 선생의 시 한 수 때문이다. 오언율시를 전해 받은 요수 선생이 그 시의 글귀를 거북바위에 새기고 이름을 바꿨다는데, 어떤 사연일까?
“‘수승으로 이름을 새로 바꾸니, 봄을 만난 경치 더욱 아름답겠네…수승을 찾아 구경하지 못했으니 속으로 상상만 늘어가누나’…. 이게 바로 오언율시인가 보군.”
“퇴계 선생이 장인 생일잔치 참석차 거창에 머물다 조정의 부름을 받고 미처 수승대를 찾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을 이 시에 담은 거야.”
경삼남도 거창 위천면의 황산마을에 부쩍 관심을 보이거나 찾아드는 발길들이 요즘 더욱 잦아진 듯합니다. 이는 아마도 남사예담촌에 이어 경남에서 두 번째로, 전국에서는 일곱 번째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에 선정돼 그 소문이 십리 밖까지 퍼져나간 게 분명합니다. 화려한 한옥촌을 기대하면서 달려간 황산마을의 고가(古家)는 되레 소박하고 심심한 쪽에 가까워 실망할 수도 있지만, 마을 역사를 품은 수승대의 비경이 더해지면 황산마을의 백미를 알게 됩니다. 마음 비우고 찾아들기 더없이 좋은 황산마을로 떠날 준비가 됐나요?
낙화암 뒤에 가려진 마지막 백제
- 충청남도 부여군 -
독야청청 소나무가 우거진 나지막한 충남 부여의 부소산은 얼핏 보면 인심 좋은 고장의 뒷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혹자는 이곳을 보며 백제의 패망을 먼저 이야기할 것이고, 혹은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를 먼저 꺼낼 수도 있습니다. 의자왕과 삼천궁녀. 그 미스터리하면서도 솔깃한 이야기는 지금도 회자되지만 진실은 알 수 없습니다. 소나무 산길을 따라 낙화암까지 오르다 보면 조금은 진실에 다가설 수 있을 거란 희망이 괜스레 생겨납니다. 그래서 <트래블아이>도 감히 제안합니다. 낙화암 뒤에 가려진 마지막 백제의 진실을 따라가라!
낙화암 가는 길목에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백화정(百花亭). 이 육각정자는 궁녀들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 세웠는데, 정말 궁녀가 3천명이나 됐을지 갑자기 의문이다.
“삼천궁녀는 실제 ‘3000명의 궁녀’가 아닐 수 있다죠?” “그렇지. 1은 적고 2도 그저 그런 수여서 3이란 숫자를 쓰는데, 거기에 또 ‘수없이 많다’는 뜻인 ‘수천(數千)을 중복으로 붙여서 ’3천‘이 됐을 거란 주장이 있어.”
“호색한과 상반되게 의자왕 효심은 따라올 자 없었다는데, 정말 역사는 답이 없는 걸까요?”
백화정에서 백마강 쪽 경사를 내려가면 고란사가 나온다. 이 흥미로운 공간에는 사찰 치고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참 많다고.
“궁녀를 추모하기 위한 절인데, 우리가 관심 있게 봐야 할 건 바로 백의불상이야. 세 부처상 중 맨 오른쪽 하얀 부처상인데, 자기 몸을 태워서 일반인을 극락세계로 인도한다지.”
“마치 백제여인들의 한을 대변하는 것처럼 들려요.” “백의보살은 국내에 거의 유일한 불상이어서 충분한 가치가 지닌단다.”
고란사 앞 고란정에서 의자왕이 마셨다는 약수물과, 여기에 함께 띄워 마셨던 고란초를 중 고란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찌된 영문일까?
“한 바가지에 3년 젊어진다는 약수, 많이 마시면 할아버지도 어린아이로 돌변한다는 그 물 맞죠? 가만 보니 고란초가 안보이네. 이런! 고란초가 모두 전멸했나 봐요!”
“우물 절벽 위 바위틈에서 수천년 자라온 고란초가 바위틈이 벌어지면서 낙석사고가 있었다지. 그 뒤로 위험해지진 탓에 강 건너 백제원으로 옮겼어. 안타깝지만 어쩌겠니.”
수도가 함락되면서 부여의 수많은 여인들이 적군으로부터 모욕을 피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오른 부소산 정상의 낙화암. 하지만 낙화암을 제대로 보는 방법은 따로 있다는데?
“정상까지 이렇게 힘들게 왔는데, 어디서도 낙화암을 한눈에 조망할 수가 없다니. 정말 송시열 선생이 새긴 '落花巖(낙화암)' 글씨만 보고 돌아가야 하나요?”
“너무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이라 그렇지. 저기 백마강호 황포돛배를 타야 제대로 보겠지만, 그보다 쉬운 방법은 난간이 설치된 전망대를 찾아봐. 이미 우리가 지나왔어!”
오래된 소나무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빼곡한 부소산은 실제 산 윗부분과 아랫부분의 나무 종류가 확연히 다르다. 그 연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부소산은 지금처럼 백제시대 때 ‘솔뫼’라고 불렀을 정도로 소나무가 많았다죠?”
“근데 이 나무들은 백제 때 나무가 아니야. 백제 멸망 때 소나무가 모두 타서 민둥산이었다가 산 아랫부분은 일본사람들이 온통 리기다소나무로 심어 지금까지 자라고 있지. 왜 그랬는지는 하산하는 길에 리기다소나무를 살펴보면서 비교해보고 스스로 판단해보려무나.”
정상을 계속 걷는다. 부여읍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반월루를 지나 사자루에 다다르면 사자루의 재미있는 어원을 들을 수 있다.
“사자루는 ‘사비루’를 잘못 쓴 글자라는 조금 우스꽝스런 얘기 들어본 적 있니?” “네. 백제의 수도 사비, 비(沘)로 쓸 것을 자(泚)로 잘못 표기했다가 그렇게 됐다더군요.”
“그렇지. 삼국사기에는 ‘사비성’으로, 삼국유사에는 ‘사자성’으로 기록했지만 알고도 그대로 쓰기로 했지. 결정적인 실수를 한 역사적 인물이 누구일까 궁금하지 않니?”
백제는 패망과 함께 땅에 묻힌 유물들이 지금도 땅만 파면 나올 정도이니 그 700년 찬란한 문화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우리가 모르는 백제는 아직 땅속에 잠들어 있을까?
“혹시 들어봤니? 백제역사는 10년마다 바뀐다고.” “아니, 무슨 역사가 10년마다 바뀝니까?”
“지금까지는 승자 입장에서 역사가 기록됐지만, 백제는 달라. 지금도 백제 유물이 계속 발견되면서 잠자던 역사가 깨어나고 있지. 그러면서 또 새로운 해석도 속속 나오고 있다고.”
화려한 700년 백제의 마지막을 함께했던 부소산. 낙화암 아래로 그 수야 어찌됐든 정조를 지키기 위해 강으로 몸을 던진 백제여인들과 비운의 의자왕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낙화암 아래를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은 유독 푸른빛을 띠나 봅니다. 백제의 고도 사비의 흔적이 빛나는 역사의 길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그렇게 백제의 향기가 묻어나는 부소산성길 위에서 여러분이 찾아낸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몰랐던 진실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섰나요?
고고한 역사의 동네 변천사
- 서울특별시 성북구 -
사대문을 감싸 안은 옛 성곽 아래, 부채꼴 모양으로 내려 앉아 서울시내를 굽어보고 있는 성북동 일대는 언덕 위로 대저택들이 많아 ‘서울부촌’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1960년대 이전만 해도 대표적인 서민 주택가였습니다. 가난한 작가, 화가 등 많은 예술인들이 일제부터 이곳에 빽빽하게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오래됐지만 바래지 않았고, 소박하지만 부유한 부촌1번지 성북동에는 이야깃거리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고고함이 묻어나는 성복동의 옛이야기를 들어라!’
예부터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아름다운 바위들이 어울린 산자수명(山紫水明)한 마을 성북동은 지금도 서울에 있지만 서울 같지 않다.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조용한 산동네에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 있지만 아직 플라스틱 굴뚝에서 피어나는 흰 연기, 오래된 한옥과 작은 골목, 비탈에는 덧니처럼 흐트러진 돌계단. 돌담에 놓인 노란색 양철통. 오래된 대폿집까지, 시간 속을 거슬러 올라가 이내 또 다른 성북동의 얼굴을 마주한 듯해.”
“맞아. 지금 서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 기억에도 없는 추억에 젖어든다니까.”
잘 보존된 고택과 미술관, 옛 선인들의 보금자리를 보고 있노라면 드라마 속 ‘성북동 사모님’도 울고 갈 부자는 따로 있는 듯하다. 성북동을 성북동답게 하는 명소를 찾아보자.
“일찍이 우리나라 고미술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알아보았던 혜곡 최순우 선생의 옛집, 현재 보수공사(2013년 9월1일 ~ 11월30일) 중이라 관람은 어려운 상태구나.”
“어떤 모습으로 일반에 공개될지 무척 기대돼. 최순우 옛집은 전통가옥의 모습에 충실하고 있다는데, 재개발의 풍파에 휩쓸려 하마터면 헐릴 뻔한 이 집을 시민들이 지켜냈다지?”
고택과 성당, 미술관이며 골목골목 숨은 찻집, 밥집까지 모두 헤아려보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출발 전, 어떻게 해야 동선을 보다 쉽고 편리하게 가져갈 수 있을까?
“선잠단지길로 100m도 채 가기 전에 작은 교통섬이 나오다니. 잠깐, 우연찭게 저기 골목을 들여다보니 북정미술관이 위치해 있는 걸 발견했어!”
“이거 잘못했으면 ‘동양의 피카소’를 놓칠 뻔했군 그래! 행여나 또 이런 좋은 구경거리 놓칠까 봐 슬슬 불안해지는데? 구청에서 그림지도나 안내책자라도 챙겨올 걸 그랬지.”
성북동길을 따라 성북초등학교 옆길까지 10분여를 걷노라면 오롯한 홍살문이 눈에 들어온다. 살진 누에고치와 좋은 실을 기원하던 선잠단지의 또 다른 옛 이야기를 들어보자.
“성종 때 선잠례를 지냈지만 1908년 제사 장소를 사직단으로 옮기면서 지금은 터만 남아 있어. 하늘높이 솟은 뽕나무는 아직도 여전한데 말이야.”
“여느 양반집 아낙을 기리는 열녀문이 있었다는데, 새삼 이 안이 궁금하지 않아? 문은 잠겨있지만 인근 주민에게 부탁하면 열어줄지 혹시 알아?”
안암동 개운사의 암자인 보타사 대웅전 뒤쪽 화강암 암벽에는 고려시대 마애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 거대한 보살상 어깨를 보면 숨은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데?
“웅대한 이 불상을 봐. 얼굴 생김새부터 토실토실한 게 미감이 풍부한 표정을 하고 있어.”
“최근에 온몸을 흰색으로 칠해서 백불의 인상을 풍기고 있군. 그런데, 이 마애불 어깨 쪽 좌우에 홈이 패여 있는 것으로 보아 불상을 보호하던 전각이 있지 않았을까? 이 아래 새긴 명문은 뭘 뜻할까?”
성북동이 내려다보이는 야외 찻집도 고풍스럽고 계곡 주변에 자리 잡은 성북동쉼터에는 쪽에는 오래된 느티나무도 그 나름의 멋이 있다. 건너편에는 또 어떤 멋들이 있을까?
“여기 좀 봐. 성북동쉼터 너머에 이런 곳이 자리해 있었다니. 한복 보자기 등 손으로 마법을 빚는다는, 숱한 주부들 기를 죽인다는 그 ‘효재’야!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참선수양을 할 수 있는 ‘침묵의 방’도 일반에 공개하고 있구나.”
“정말이네. 울긋불긋 담쟁이가 돋보이는 새하얀 담장이 특히 매력적이야.”
길상사를 나와 만해 한용운 선생의 유택으로 향하다 보면 비둘기 조형물과 함께 한쪽 벽면에 소설 <성북동 비둘기> 현판이 위치한 비둘기공원이 또 한 번 발길을 잡는다.
“이곳을 지키고 있는 이름 모를 잡초가 왠지 쓸쓸해 보여.”
“슬레이트 지붕을 올린 집들과 동네를 비집고 들어선 100평짜리 저택들, 골목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는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를 읊조리겠지?”
좁은 골목길은 제법 가파르다. 숨이 턱에 찰 즈음 한용운 선생이 말년을 보냈다는 심우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옥이 일반적으로는 보기 드물게 북향이어서 관심이 더 간다.
“마당 너머 한 눈에 들어오는 성북동 전경도 좋은 볼거리로구나. 낮은 지붕이 마주칠 정도로 다닥다닥 붙은 주변의 작은 집들이 멀리 산자락의 대관저들과 상반돼 더 특이하다.”
“그렇구나. 마당의 향나무는 만해가 손수 심었다지. 그런데, 만해는 무엇이 보기 싫어서 산비탈로 방향을 틀어서 집을 지었을까?”
명망 있는 재벌가 대사관저가 몰려있어 ‘부자들의 동네’로 이름난 성북동은 한 걸음 더 들어서면 옛 선인의 발자취가 그대로 녹아 있는 동네였습니다. 조선의 도읍 한양을 지키던 서울성곽에 고종의 다섯째 아들의 별채가 있고 만해 한용운의 기개가 돋보이는 한옥과 요정정치 산실에서 급변신한 문화 종교시설, 민간모금운동으로 지켜낸 시민문화유산 1호까지. 사실 성북동의 문화유산을 돌아보려면 4~5시간이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기왕 마음먹은 여행, 넉넉하게 한나절 할애해보는 건 어떨까요?
박물관의 고장에서 꿈을 키우다
- 강원도 영월군 -
영월은 역사와 문화의 고장인 만큼 이색적인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국에 수많은 유적지와 역사를 자랑하는 곳들은 많지만 다양한 박물관을 만나볼 수 있는 지역은 더욱 드물기 때문에 영월의 약 20개에 달하는 다양한 박물관이 더욱 빛을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민화부터 천문, 지리 등 지난 역사와 호흡하고 빛바랜 시간들을 추억할 수 있는 곳 영월.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영월의 다양한 박물관에서 역사와 호흡하고 돌아오라’
청령포는 조선 제6대왕 단종의 유배지로 슬픔이 얼룩진 역사의 현장이다. 영월 곳곳에 남아있는 단종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이곳 자체가 하나의 열린 박물관인 셈이다.
“이곳이 청령포란다. 청령포는 3면이 서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 면이 층암절벽으로 막혀 있어 나룻배가 없이는 드나들 수 없는 외딴 섬 같은 곳이었단다. 이곳에서 단종은 두 달간 유배생활을 했지"
"어린나이에 왕좌에 올랐다가 유배를 떠나 사약을 받기까지 단종은 이곳에서 꽤 많은 눈물을 흘렸을 거야. 지금도 그 한과 슬픔을 기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단다.”
차마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없어 스스로 그늘 진 삶을 선택한 김삿갓. 이름대신 나그네 김삿갓으로 불렸던 그의 끝없는 방랑생활을 들여다볼까?
“단종만큼이나 김삿갓도 참 슬픈 생활을 한 것 같아요 아빠.”
“자신의 외조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로 장원급제를 한 김병연은 자신의 이름을 김삿갓으로 대신하고 차마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없다며 삿갓을 쓰고 전국을 떠돌았지. 그가 남긴 시들은 참 재미있단다. 구수하면서도 신랄하니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입에 착착 붙는다지.”
소박하고 실용적인 그림에서 익살스럽고 파격적인 그림까지, 우리 고유의 정서와 삶의 깊이가 느껴지는 민화에서 삶의 그림을 느낄 수 있다.
“호랑이가 전혀 무섭지 않게 느껴져요. 눈을 크고 동그랗게 표현해서 일까요?”
“그렇지. 민화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참 재미있단다. 당시 사람들의 소박한 생활모습부터 서민들의 익살스런 표현이 담긴 그림까지. 민화를 좀 더 알고 싶다면 직접 체험해보는 것이 가장 좋겠지? 붓을 쥐는 법부터 민화를 그려보기까지, 시간가는 줄을 모르겠구나.”
주천과 연당삼거리를 지나 왼편에 영월곤충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이 아이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뭘까?
“날개에 화려한 태극무늬가 그려진 태극나방을 비롯, 한라산에서 설악산까지 날아간다는 왕나비, 쇠똥구리, 장수하늘소, 풍뎅이 등 1만여 점의 곤충을 모두 볼 수가 있네요.”
“이들 곤충 표본은 모두 이곳 시설 관장이 30년 동안 발품을 팔아 수집한 것들이라는데, 관장은 한국인 최초로 새로운 혜성을 발견한 아마추어 천문가이기도 하다지.”
육지 면적의 5분의 1, 8억이 넘는 인구가 살아가는 대륙 아프리카. 이 대륙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그들의 정신을 깊이 살펴보고 싶다면, 한번쯤 찾아가 볼 만한 곳도 있다.
“거대한 코끼리 상아 한 쌍과 상아를 이용한 작품들을 좀 봐요.” “작품의 아룸다움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이것이 전시되기 위해 희생된 코끼리를 한번쯤 생각해보자는 것이라니 역시 깊은 뜻에 고개가 숙여지리 거야.”
“미처 알지 못했던 아프리카의 문화와 전통예술 그리고 그들의 정신까지 만날 줄이야.”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호안다구박물관에서는 녹차와 관련된 각종 도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전통과 현재를 아우르는 자연의 산물 차의 진면모를 살펴 볼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너무 문화적으로 삭막해요. 여유가 없으니까요. 잠시나마 여기 머물러 있는 동안에 여유를 찾고 문화가 이런 거구나 느끼고 행복을 듬뿍 안고 가면 좋겠어요."
“맞아. 바쁘게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럴 때일수록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기다림의 미학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구나.”
세계 민속악기를 한곳에서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는 재미를 누리고자 한다면 세계민속악기박물관도 만나볼 수 있다. 100여 개국 200여점의 악기를 소장하고 있다는데?
“인도, 서남아, 중동,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유럽, 남태평양, 대양주의 문화권별로 악기를 분류해서 전시하고 있구나.”
“직접 다양한 세계 각국의 악기를 연주 해 볼수 있는 체험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정말 다채로운 영월의 박물관들을 둘러보다 보니 꿈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하늘 끝을 올려다보면 수많은 보석들이 하늘을 수놓고 있다. 나를 닮은 별자리는 어디 있을까? 하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면 어느새 별들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오늘의 마지막 여정지네요. 하루를 별을 보며 마무리 할 수 있어서 좋아요. 검기도 하고 푸르기도 한 밤하늘에 별들이 아름다운 건 영월의 공기가 맑아서겠죠?”
“우리아들 오늘 박물관 체험을 하고 나니 제법 근사한 말도 하는구나. 저 많은 별들 중 우리 아들의 별자리가 어디 있나 한 번 찾아볼까?”
<트래블아이>와 함께 영월의 이색박물관 여행! 역사와 문화를 호흡해보니 어떤 기분이 드나요? 박물관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공간이라는 오해가 조금은 풀린 것 같지 않습니까? 교과서 밖 또 다른 교과서인 영월의 다양한 박물관은 지나온 역사를 이해하고 앞으로의 성장을 해나가기 위한 디딤돌이 되어 줄 것입니다. 박물관에서 우리 정서의 깊이를 느껴보고 삶의 그림들을 찾아보며 박물관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길러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소담한 절집으로 봄마중을
- 충청남도 논산시 -
봄 하면 꽃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러한 봄꽃만큼 화사한 것들이 충청남도 논산에는 많습니다. 쌍계사 대웅전 꽃창살이 그렇고, 볕이 든 사랑채의 풍경이 또 그렇습니다. 건물도 늙습니다. 논산 쌍계사 역시도 그러합니다. 하지만 대웅전에서 잘 늙은 온화한 꽃문살을 만나면 그 모습마저 닮고 싶어집니다. 빨리 봄 느끼고 싶어 안달이라면 훌쩍 다녀와도 좋을 쌍계사. 봄마중 하면 으레 생각하는 남도보다도 찾아가는 길도 부담이 덜합니다. ‘가야곡면 불명산 소담한 절집으로 봄마중을 떠나라!’ 이것이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대웅전은 국가지정보물이다. 이곳의 꽃창살 덕을 톡톡히 본 듯싶다. 하지만 꽃창살과 어우러진 단청 또한 문창살만큼이나 고상하고 우아한 멋이 있다.
“건물 양쪽 측면에도 '꽃'은 피었어. 각각의 출입문 위에 모란 당초무늬를 잎과 줄기까지 꼼꼼하게 새겨져 있잖아.”
“기둥도 눈여겨봐도 꽤 흥미로워! 대웅전 기둥이 되는 나무들이 여느 절집과 비교해 아주 우람하지만 고색창연한 색바람이 묵직한 세월의 깊이를 느끼게 해.”
‘꽃’을 잔뜩 본 후 마루에 앉아 볕을 쬐면 겨우내 굳었던 근육이 슬그머니 풀어진다. 잠깐만 앉아 있어도 ‘봄이 왔구나’ 느껴질 정도다.
“지나치게 넓지도, 좁지도 않은 마당과 잘 꾸며놓은 연못의 조화에 눈이 즐거워져. 담장과 솟을대문이 없어 절이 한눈에 다 들어오기 때문인가. 주변에 배롱나무, 향나무도 가득하고.”
“초여름 배롱나무 꽃이 피면 더 예쁘다는데, 요즘에도 볕 좋은 날 오후 풍경은 그에 못지않다지? 그래서 하동에 있는 쌍계사와 비교해서 호젓함은 이곳이 더 낫다고 봐, 나는.”
색바람이 묵직한 세월을 대변하듯 얕은 숨을 내쉬는 대웅전. 누각 2층 바닥을 지붕 삼아 걷다 보면 특이한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나무문에 피어난 대웅전 어간문이 부처님께 꽃 공양이구나. 거기에 꽃살문이 연화장 세계의 정점을 찍고 있어. 가만. 일주문조차 없는 이 도량은 찢어진 북 하나 덩그러니 올린 2층 누각이 대문 역할을 하고 있어.”
“그래도 일주문인 셈이니 합장하고 돌계단을 따라가자.”
넓은 마당 가운데 놓인 두 개의 돌길을 곧장 향하면 야트막한 담장 아래서 고양이가 우리보다 먼저 봄마중을 하고 있다. 이곳은 왠지 온기가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돌들이 서로 몸을 포개고 꼭대기에 저마다 부처님의 미소가 올려놓았어.” “나도 그런 느낌을 받았어. 봐봐, 하나는 논산 관촉사나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 같아. 단지 돌 한 개는 몸을, 다른 하나는 용상을, 나머지는 갓처럼 보일 뿐이지.”
“누구 정성인지는 모르지만 도량 곳곳에서 부처님 숨결을 느끼게 해주는구나.”
‘숨 쉬는 대웅전’에서 꿈틀대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이생에서 맺은 인연과 더 정을 나누고 싶다는 기도객들의 소망처럼 대웅전 기둥 하나가 유독 반질반질하다. 어떤 사연일까?
“유난히 검게 물들어 윤이 나는 저 나무기둥, 마음이 쓰이지 않니? 대웅전 기둥 하나하나가 굵고 희귀한데 저 기둥만 검잖아?”
“저 기둥은 대웅전 기둥 중 유일한 칡덩굴 나무라지. 게다가 윤달이 든 해에 안고 돌면 죽을 때 고통을 면한다고 전해지니 신기하지 않아?”
안내판을 보니 쌍계사의 숨 쉬는 이 대웅전이 보물 제408호란다. 창건연대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나 알 수 없고….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또 한 번 마주하게 될 것이다.
“여기를 좀 봐봐. 현재 공주 갑사에 있는 ‘월인석보목판(보물 제582호)’이 원래 쌍계사에서 보관했던 것이라고 적혀 있어.”
“월인석보?” “그건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판목이야!”
대웅전 옆에는 관음보살좌상이 있다. 불성이 있는 누구라도 이곳 쌍계사를 한 번만 다녀가면 깨끗한 용상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는데, 정말 다가갈수록 놀라운 모습을 보인다.
“스님도 기도객들도 저 깨끗한 관음보살을 거울삼아 마음을 닦고 있는 듯하지. 우리도 좀 가까이 다가가서 보자.”
“옷 주름 등이 때를 입었지만 용상만은 하얗게 빛이 나고 있어. 용상만큼은 비에 젖지 않을 것 같아. 어떤 사연인지 궁금해 죽겠어. 우리 주지스님에게 차를 청해볼까?”
쌍계사는 고졸한 맛이 있습니다. 화려함보다는 전설이 깃든 역사성이 돋보이는 절이고, 중창불사가 일어나 한동안 다듬고 가꾸어질 여지가 무궁한 절입니다. 절에는 입구의 부도전과 중심인 대웅전 그리고 명부전이 돋보이는 건 그 역사성일 겁니다. 그러나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이 절에서 유명한 세 가지, 즉 대웅전의 꽃창살과 이 절이 지닌 여러 가지 전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명부전에 들어 지장보살을 위시하는 용상입니다. 특히 대웅전은 겨울이 오기도 전에 봄을 보여줍니다. 온화한 고찰과 함께하는 봄마중, 지금 채비를 서두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