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유화 같은 풍경
- 전라남도 화순군 -
말 그대로 붉게 채색된 절벽, 깎아지른 듯 수직으로 치솟은 모습만도 웅장한데 길이도 범상치 않은 전남 화순의 적벽. 장장 7㎞인지라 눈을 아무리 멀리 가져가도 그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적벽 사이로 흐르는 강물은 또 어떻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가늠하기 어려운 적벽을 송두리째 투영시켜 그 크기가 배는 된 것 같습니다. 적벽 아래를 흘러가는 동복천은 그냥 보내기도 아쉬울 정도입니다. 오죽하면 김삿갓조차 이곳에서 유랑을 끝냈을까요? <트래블아이>가 여러분께 제안합니다. ‘유화 같은 풍경 화순적벽을 유랑하라!’
창랑천에는 약 7㎞에 걸쳐 화순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 물염적벽 등 크고 작은 절벽들이 있지만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유독 화순적벽을 찾았던 이유는 뭘까?
“화순적벽. 벌써 수십 년도 더 된 시간의 저편이라 마을 노인들의 기억 속에만 닫혀 있지. 하지만, 화순의 적벽은 한때 이 땅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명소였어.”
“호남팔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화순적벽, 중국 양쯔강변의 소상적벽을 연상케 해. 어디 그뿐인가? 소동파의 적벽부를 생각나게 하는 절경이야. 이 ‘적벽’이 조선시대 붙여진 거 아나?”
화순적벽과 맞은편의 보산적벽은 규모는 작지만 세월의 풍파를 지나 이제는 사람을 가까이 할 수 없기에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하지만 희망의 길도 분명 있다는데?
“창랑적벽이나 물염적벽과 달리 화순적벽과 보산적벽은 안타깝게도 상수원보호구역 안에 위치해 일반인 출입이 금지돼 있구나.”
“보산적벽 위의 평평한 구릉에 보이는 저 망향정 보이지? 저 편백나무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네 슬픔이 조금은 가실 거야.”
그렇게 잠가놓은 화순적벽은 1년에 단 한 차례만 문을 연다. 수몰 실향민들이 모두 모여 고향 땅을 향해 제례 겸 잔치를 지내는 날이 그날이다. ‘조선 10경’을 볼 수 있을까?
“차단기를 지나 비포장길로 접어든지 꽤 됐는데… 어, 그렇지! 동복호의 맑은 물 위에 솟아있는 보산적벽 너머 검붉은 위용의 저것이 바로 화순적벽이지?”
“맞아! 까마득하게 수직으로 치솟은 적벽의 아득함. 아하, 이런 정도의 풍경이니 ‘조선 10경’으로 꼽지 않을 도리가 없었겠어.”
처자식을 떠나 ‘동가숙 서가식’하던 김삿갓은 34세 되던 때 처음 화순적벽을 마주했다. 이때만 해도 이곳에 뼈를 묻게 될 줄은 꿈에도 몰을 그의 첫 심경, 어떠했을까?
“화순적벽의 웅장함은 그 앞에 서보지 않은 이들은 짐작조차 하기 힘들 거야. 이 거대한 규모며 웅장한 기운. 글은 물론이거니와 사진으로도 다 담아낼 수 없겠지.”
“맞아. 김삿갓도 화순적벽의 절경에 취해 걸음을 멈추었을 거야. 삿갓을 살짝 들고 화순적벽을 응시했겠지? 그리고 괴나리봇짐에서 지필묵을 꺼내 짤막한 시 한 수를 지었을 게야.”
백아산에서 발원한 동복천이 항아리 모양의 옹성산을 휘감아 돌면서 거대한 산수화를 그리고 있는 화순적벽. 하지만 여기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하나 전해온다는데?
“조선 중종 때 유학자이자 개혁 정치가였던 조광조가 화순에서 사약을 받기 전에 25일 동안 배를 타고 다니며 화순적벽의 절경을 감상하면서 한을 달랬다지.”
“어디 그뿐인가? 어쩌면 화순을 찾아가는 여정에서는 풍경보다는 실타래처럼 풀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더 안성맞춤일지도 몰라.”
화순에는 오래 묵은 역사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도 풍성하다. 그 중 가장 매혹적인 이야기는 단연 모후산 아래 절집 유마사에 얽힌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고.
“이 풍치림을 좀 봐! 유마사로 드는 길은 편백나무가 도열하는구나.” “한때 호남지역에서 가장 큰 절집이었다지?”
“지금은 반들반들 윤이 나는 새것들로 가득하지만, 이곳을 한번은 찾아봐야 까닭은 전설 속의 여인 ‘보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지. 혹시 보안과 부전스님의 이야기를 알고 있니?”
물염적벽은 비단결 같은 강줄기와 주위 풍광을 감싸 안은 듯 포근하고 고색창연한 물염정이 압권이다. 물염정은 김삿갓이 즐겨 찾던 이 정자에 가면 뭔가 특별함이 있다는데?
“저 병풍처럼 깎아지른 기암괴석과 노송의 풍취를 좀 보게! 물염정에 앉아서 보니 세상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티끌 하나 속됨 없이 살겠다는 이 정자의 뜻처럼 청정해이지 않나!”
“여기 정자 안도 좀 보라고! 김인후, 이식, 권필 등 조선 선비들이 지은 시문도 다닥다닥 붙어 있구먼! 여기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라고! 꽤 흥미진진해질 걸?”
화순적벽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망미정에 다다르면 정시룡 방랑생활부터 화순의 동북을 세 번 들른 김삿갓까지, 온갖 의문점에도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조선팔도를 두루 섭렵한 김삿갓이 하필 화순의 동복을 세 번이나 방문했을까? 동복의 구암리 마을 정시룡은 왜 사랑방을 제집 드나들 듯 하다 여기서 방랑생활을 마감했을까?”
“글쎄, 분명한 건 ‘내 집에 오는 손님을 반겨 맞으라’는 정씨 가문의 넉넉한 인심 때문만은 아닐 거야.”
호남 8경이자 조선 10경의 그 빼어난 전남 화순의 적벽을 둘러보는 여정이지만 쓸쓸할 수도 있습니다. 화순적벽 앞에서 ‘일반인 출입금지’ 조항에 발이 묶여버리는 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을볕에 반짝거리는 동복천과 그것을 비추는 적벽의 풍경은 마치 인상파 화가가 그린 두꺼운 유화작품처럼 여전히 다양한 색으로 현란합니다. 갈대와 억새에 가을볕이 부서지고, 물 건너편에는 온통 단풍이 불붙어 수면에 물그림자를 찍어냅니다. 어디라고 딱히 짚을 것도 없이 화순의 적벽에서 만나는 풍경이 모두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82길 15, 393호 Tel: 02-408-9274 Fax: 02-595-9274
copyright (c) 문화마케팅연구소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