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시를 써 왔다. 그러니 내 이 마지막 수필은 어쩌면 다분히 시적이고 또 어쩌면 아주 알아듣지 못할 말로만 채워져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절망 때문이었다. 다른 모든 시인들도 그렇게 말했다. 세상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니 내가 펜을 드노라고. 정말로 그랬다. 내가 겪은 상실이나 슬픔의 깊이를 말로 표현해 내는 것은 정말로 견딜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혀끝에서 나의 감정은 녹슬고, 때 묻고, 가벼워져 버렸다. 그러므로 나는 펜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여기에서 절필을 결심했다.
내게는 삶의 터전이라는 것이 없었다. 기쁨이라는 것도 없었다. 내 명의로 된 집이나 차를 가져 본 적이 없었고, 내가 가진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나누고 싶은 배우자를 만난 적이 없었으며, 흔히들 말하는 토끼 같은 자식들이란 꿈에나 나오는 말이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고아원에서 자랐고, 검정고시에 합격하지 못했으며, 이력서에는 쓸 말이 하나도 없었다. 지하철 역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잠을 청해 본 적이 있으며, 백 원이 모자라 컵라면을 사 먹지 못했던 적도 있다.
물론 항상 가난했던 것은 아니다. 먹고 살 만큼의 돈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일거리가 있을 때에는 일을 했고, 없으면 없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세상 모든 불행이 내 인생만을 방문하는 것 같은 이 기분을 누구에게 설명해야 위로받을 수 있을까. 진정한 위로는 공감 위에서만 탄생한다. 그러므로 나는, 위로 받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 모든 불행 가운데서 놓지 않았던 단 한 가지가 바로 시를 쓰는 일이었다. 종이와 연필 하나만 있어도 충분한 취미라는 것이 어려서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니까, 시와 나의 만남은 지독한 가난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시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내가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은 내가 아직 카메라를 갖지 못했다는 뜻이며, 아직 골프장의 잔디를 밟아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나마 좋은 점이 있다면 언제나 어느 때나 발 닿는 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 수목원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내가 언제나처럼 딱히 갈 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고, 운 좋게 내 바지의 왼쪽 주머니에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한 장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그 뿐이었다.
물향기 수목원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물향기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오는 날에도 미소 지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수십 년 간의 비관은 사람의 눈을 가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내가 종이와 연필을 꺼내 든 이유는, 수목원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왕에 시를 쓸 것이면 인공적인 나무와 인위적인 호수, 이기적인 인간들의 군상을 담아야만 했다. 나는 그것이 내가 시를 쓰는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절필을 결심한 것이 어느 지점에서였더라. 토피어리 정원을 지나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졌을 때였을까, 미로원을 지날 때였을까, 아니면 저 멀리서 아이들이 징검다리를 건너는 모습이 보였을 때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고목 아래의 벤치에 앉아 혼자 책을 읽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았을 때였을까. 이것마저 아니면 늪지에 핀 꽃들을 보았을 때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오래 멈춰 서 있었던 곳은 수생식물원이었다. 개구리밥과 수련, 갈대 등이 수면을 가득 덮고 있어서 처음에는 초원인 줄 알고 다가선 것이었다. 가까이 가 본 나는 이곳이 늪지였다는 사실에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이루지 못한 모든 것들이 늪지 아래로 가라앉아 버리는 느낌이었다.
그 때, 실잠자리 한 마리가 눈앞을 스쳤다. 실잠자리가 가는 방향을 보니 쇠오리 새끼 한 마리가 겁도 없이 물가로 올라오고 있다. 그 옆에는 수련 한 송이가 피었는데, 그 뿌리가 검은 물 밑으로 잠겨들고 있었다. 수련을 노려보며 종이에 시상을 적어나가려던 찰나, 잉어 한 마리가 수련 줄기를 툭 건드리고 지나갔다. 물 밑의 잉어에서 그 위의 수련으로 자연스레 시선이 옮겨갔다. 검은 물 아래서 올라온 연녹색의 줄기가 하얀 수련을 피워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연필을 놓치고 말았다. 연필은 데구르르 굴러 물 밑으로 사라져버렸다. 문득, 연필이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수련 한 송이를 피워내는 상상을 했다. 수련에서 물향기가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