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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골목, 색(色)을 입다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 보면 하루는 너무나 짧아.' 영화 ‘선생 김봉두’의 삽입곡 가사 중 일부다. 이 노래를 대개 TV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골목길 위 어린이들의 천진한 놀이 풍경을 그린 이 노래에서는 아날로그 세대의 옛 추억이 절로 연상된다. 이처럼 골목이라는 소재는 특별히 꾸미지 않아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이는 아마 포장 안 된 도로와 거칠게 덧바른 시멘트, 드문드문 정물처럼 놓인 생활의 잡동사니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날 것 그대로가 아니어서 더욱 눈길을 끄는 경우도 있다. 한 듯 안 한 듯 소박한 화장을 한 시골 여인네처럼, 안 꾸민 듯 질박하게 꾸민 탓에 더욱 유명해진 전국의 골목 네 군데를 소개한다. 

                    
                

골목에서 희망을 보다, 부산 감천문화마을

  • 부산 감천문화마을의 조형물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특징이다

때로는 수식어가 원형만 못 한 경우가 있다. 한국에는 유독 ‘동양의~’. ‘한국의~’ 라는 식의 수식어가 붙은 관광지가 많은데, 예를 들면 동양의 나폴리, 한국의 산토리니 하는 식이다. 이런 수식어는 일견 해당 관광지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만이 전부일까. 그곳을 처음 방문한 이들이 눈앞의 광경을 그저 그 자체로 바라보기도 전에, ‘이러이러한 곳’이라고 섣불리 규정해버리는 건 아닐까.
 
감천문화마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산 중턱에, 마치 처음부터 산과 하나인 듯 자리한 감천마을을 두고 ‘한국의 산토리니’라는 식으로 수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단언컨대 감천문화마을은 그냥 감천문화마을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에 단 한 곳뿐인, 그래서 고유한, 그래서 더욱 가치 있는 하나의 ‘마을’이다. 그러나 이런 안타까움은 잠시 논외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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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굽이굽이 골목마다 놓인 오브젝트는 감천문화마을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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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화로 피어난 꽃이 보기에 아름답다

부산 시민들 사이에서는 물론 전국 명물이 된 지 오래인 감천문화마을은 색색의 벽화와 구불구불한 지형으로 관광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또 골목골목 자리한 색색의 조형물들은 꼭 그곳에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자연스러움을 뽐낸다. 양지바른 곳에 빽빽이 들어찬 저마다의 집과, 그 집 벽에 얹힌 저마다의 그림은 보는 이의 마음에 왠지 모를 희망까지 준다. 이토록 가파른 곳에 이처럼 아름다운 사람의 손길이 닿았음에, 누군들 희망을 품지 않겠는가.

 

'열 우물 마을'에 색을 입히다, 인천 십정동

  • 인천 부평구 십정동 벽화골목은 이웃이 이웃에게 내민 따스한 위안의 손길이다

우물이 한 개도 아니고, 자그마치 열 개나 있었다. 그래서 ‘십정(十井)’이다. 예부터 물이 풍부한 우리나라는 전국 어디든 목마르면 우물을 파서 그 우물로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지냈다. 인천 부평구의 십정동 골목도 마찬가지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십정동이 사람의 손길을 타면서 출사지가 되고 유명해졌다는 것이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촬영지이기도 한 십정동은 소위 달동네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사는 ‘아랫동네’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십정동에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작업이 관(官) 주도가 아닌, 민간 주도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구청 등이 주민들 복지를 위해 시도한 것이 아니라, 이웃이 이웃을 위해 한 일이라는 사실이다. 잿빛 담벼락 안에서 고되게 살아가는 이웃의 고달픔을 채 외면하지 않은, 우리 시대의 위대한 ‘이웃’들이 스스로 한 일이라는 사실이다.

 

개미처럼 부지런해서, ‘개미마을’

서울 홍제동에는 ‘개미마을’이라 불리는 골목이 있다. 이곳 역시 영화, 드라마 등의 촬영지가 된 곳인데, 대표작으로 영화 ‘7번방의 선물’이 있다. 물론 이 영화의 주무대가 개미마을은 아니지만, 개미마을의 따스한 느낌과 정감은 영화에 충분히 표현됐다 할 것이다.
 
개미마을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안타깝게도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과거 우리나라 국민의 절대 다수가 어렵게 살던 시절, 이곳 산 중턱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개미처럼 부지런히 살았다고 해 ‘개미마을’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것이 하나의 설로 남아 있다.
 

  • 산동네 담벼락에 피어난 벽화를 보며 홍제동 개미마을 주민들은 위안을 얻을 것이다.

여하튼 개미마을은 앞서 소개한 다른 두 마을과 비슷하게, 마을이 온통 벽화로 꾸며져 있다. 벽화의 단골 소재는 원래 해바라기일까. 혹은 벽화 작업을 맡은 이들의 무의식에는 ‘해바라기=희망’이라는 도식이 잠재돼 있는 걸까. 개미마을에서도 다른 많은 국내의 벽화마을에서처럼 해바라기 벽화를 찾아볼 수 있는데, 비록 페인트가 벗겨지고 색도 조금 바랬지만,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애틋함과 짠한 마음을 자아낸다.
 
개미마을은 서울 강북에 있는 빈촌이며, 거리 곳곳에서 화려함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이곳에서 화려한 것은 벽화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온통 가라앉고 침체된 듯한 곳이 이곳 개미마을이다. 혹은 벽화가 그려진 이후 무언가 변화가 있었을까. 미술 테라피 등과 같은 전문 용어는 차치하고라도, 개미마을의 벽화가 이곳 주민들의 고단한 삶에 작은 위안이 돼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벽화 작업자는 붓을 들었을 것이다. 

 

조선 땅에 서양인이 나타났다, 강진 하멜골목

외국인이라면 일본인이나 중국인, 혹은 멀리 남쪽 뱃길 따라온 아랍인(신라 시대)이 거의 전부였던 조선시대. 바람결 풍랑에 휩쓸려 엉겁결에 조선 땅을 밟은 서양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하멜(Hendrik Hamel)이다. 동인도회사 소속의 네덜란드인이었던 하멜은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다가 표류해 한양에서 처형될 뻔했으나, 목숨을 부지하고 그 대가로 조선의 군사기관 중 한 곳인 훈련도감에 소속돼 무기를 ‘갈고 닦았다’. 비록 생명 부지한 하멜이지만, 어명에 따라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 된 것이다.
 
강진 땅에서 하멜이 갖은 고생을 했을 것은 쉽게 짐작할 만하다. 낯설고 물선 곳에서 이방인에 둘러싸여 무려 13년을 살아야 했던 서양인. 그는 나중에 홀연히 귀국해 ‘하멜표류기’라는 책을 남겼고, 그 덕분에 본인이 훗날 한국에서 유명해진 것은 물론 유럽에 한국(조선)을 알리는 계기도 됐다.
 

  • 전남 강진 병영골목은 17세기 조선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하멜을 기억하기 위해 조성됐다.

이러한 하멜의 일생을 기억하고자 조성된 곳이 바로 강진 하멜 병영골목이다. 그 당시 하멜은 ‘전라병영성’이라는 곳에서 무기 관리 업무를 수행했는데, 이러한 역사와 더불어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관한 개략적 소개, 미니 풍차 등을 이곳에서 함께 둘러볼 수 있다.
 
물론 풍차 모형과 하멜 동상, 갓 조성된 티가 나는 ‘새 길’을 통해 하멜 관련된 것을 모두 기억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러한 것이 역사 교육과의 접점에 있음은 자명하다. 강진과 하멜의 관계를 몰랐다면 기념관을 통해 처음 알게 될 것이고, 대충 혹은 잘못 알고 있었다면 이를 통해 정확히 알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곳을 어떻게 보는가’일 것이다. 이는 비단 하멜골목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터다. 감천문화마을, 개미마을, 십정동 벽화골목, 그리고 마지막 하멜골목까지. 그저 유명하니까, 남들이 가니까, 패키지 여행상품에 포함돼 있어서 간다는 궁색한 핑계는 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 유람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관광에도 자기 성찰이 필요한 시대다. 밖과 안을 동시에 들여다볼 줄 아는 안목이 여행에도 필요하다. 아련한 추억 속 골목의 정취는 그럴 때 비로소 ‘자기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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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골목이라도 더 화려하게 거듭날 수 있습니다. 날 것 그대로일 때보다, 사람의 손길을 타서 더욱 거듭날 수 있는 것은 비단 사람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골목과 벽화에 대한 [트래블투데이]의 생각, 트래블피플도 공감하나요?

트래블투데이 심성자 취재기자

발행2022년 03월 13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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