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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어 더욱 특별한 맛


우리가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세 가지를 이르는 ‘의식주(衣食住)’ 중 정중앙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 식(食).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우리는 먹을 것과 결코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 때문에 맛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넓게는 인류의 역사에서부터 좁게는 마을의 역사까지, 그리고 이 긴 세월을 거쳐 온 생활상과 집단 간의 관계까지가 음식에 담기는 것이다. 그러니 여행을 하며 즐기는 식도락 가운데 여행의 본질과 가장 밀접하게 닿아 있는 것은 바로 여행지와 ‘이야기’로 엮인 맛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닐까. 

                    
                

가을마다 피는 달콤함, 시대를 넘다

최고의 감이라 하면 예천의 은풍준시와 상주군의 상주곶감, 청도의 청도반시를 꼽기 마련인데, 이 감들은 모두 임금님께 바치던 진상품이었다. 따뜻한 남부지방에서 햇살을 가득 머금고 자란 달디 단 그 맛이야 변할 리가 있겠냐마는, 요즘 시대에 달지 않은 감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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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면 가지 끝에 달콤하게 피는 그 맛이 인기 만점이었던 것은 오랜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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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 와인을 맛볼 수 있을 뿐더러 아름답기까지 한 청도 와인터널은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 만점이다.

발전을 위한 노력이 없다면 그 옛날 제 아무리 진상품이었다 한들 뒤처지기 마련인데, 요즘 감들은 감말랭이, 반건시, 곶감 등의 먹거리를 넘어 감 화장품, 감 염모제 등으로 눈부신 변신을 성공해내고 있으니 걱정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특히나 주목할 만한 것은 청도군의 감 와인이다. 임금님께 진상하던 그 감을 활용해 만들고, ‘감그린’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이 와인은 1,000여 미터 길이의 와인 터널에서 숙성된다. 금실로 반짝이는 곤룡포 대신 LED로 반짝이는 와인터널과 함께하게 된 감. 가히 그 달콤함. 시대를 넘었다 할 수 있겠다.  

 

분지에 담긴 얼큰한 맛

신작로와 경부철도가 생기며 도시도 생겨났으니, 바로 대구광역시에 대한 이야기다. 새로 생긴 길을 따라 사람들이 모였고, 시장이 생기고, 먹거리가 모였다. 대구가 유독 먹거리 많은 도시로 유명한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따로 국밥'이라 하면 육개장과 비슷한 요리에 선지가 함께 들어간 것을 이른다.

시장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역시 국밥류였다. 가장 이름난 국밥이라 한다면 역시 따로국밥, 대구탕, 그리고 육개장. 조금씩 미묘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실은 모두 쇠고기를 잘게 찢어 넣고 맵게 끓여 낸 음식을 이르는 말이다. 밥과 국을 따로 먹으니 따로 국밥, 대구 사람들이 즐겨먹으니 대구탕, 개고기 대신 쇠고기를 쓴 국이라 하여 육개장이니 말이다. 여하튼 대구를 대표하는 음식이 무엇이냐 물으면 따로국밥이라 하거나, 대구탕이라 하거나, 혹은 육개장이라 하니 재미있는 일이다. 

 

500년을 지켜 온 전통, 그 안에 담긴 맛

남해의 지족해협에서는 죽방렴을 만날 수 있다. 죽방렴이란 대나무 살을 엮어 고기를 낚는 원시 어업 방식을 이르는 말. 조선 예종 때 편찬된 <경상도 속찬지리지>에서 “방전에서 석수어, 홍어, 문어가 산출된다”는 이야기를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방전’이 바로 대나무어사리, 죽방렴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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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멸치를 선사하는 남해 앞바다의 죽방렴은 고즈넉한 멋 또한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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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 멸치로 끓여낸 찌개는 남해군을 대표하는 별미 중 하나이다. 

명승 제 71호로 지정되어 있는 만큼, 남해안의 일몰과 어우러져 더없이 황홀한 풍경을 만들어 주기도 하는 죽방렴은 단순히 전통을 보존하는 데에만 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물로 잡은 것과는 달리, 매끄러운 대나무 살을 이용해 잡은 고기에는 상처가 없으며 내장을 빼지 않아도 씁쓸하지 않다. 때문에 남해군에서는 죽방렴 멸치를 이용해 만든 다양한 별미들을 맛볼 수 있다. 멸치쌈밥과 멸치 회, 생멸치 찌개 등을 맛보며 500년 전통 방식이 선사하는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면 식도락 수준도 중고수 반열에는 오른 셈이다. 

 

특명, 맛에 기품을 담아라

  • 선비의 고장 안동과 문화유산의 고장 경주의 술인만큼, 안동소주와 경주 교동법주에는 기품이 담겨 있다.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던 안동. 안동하면 딱 떠오르는 이름난 별미들이 몇 있겠지만, 오랜 세월동안 사랑받으며 지역의 빛깔이 오롯이 담긴 음식으로는 역시 안동 소주가 있겠다. 주류 관련 각종 대회에서도 상을 휩쓸며 그 명성을 인정받아 온 안동 소주는 안동 지방의 사대부 가문에서 전해지던 술.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던 술이나, 백성들이 상처나 복통 등을 치료할 때에도 안동 소주를 사용하였다 하니 선비들의 마음 씀씀이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안동 소주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면 역시 독한 냄새 대신 그윽한 향이, 쓰린 목넘김 대신 달큰하고 부드러운 맛이 입 안 가득 퍼진다는 점. 하지만 그 도수가 45도에 가깝다 하니 과음은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기품이 담긴 술맛이라 하면 경주에서 대대로 빚어 오고 있는 경주 교동법주를 빼 놓을 수 없겠다. 최 부잣집이 있는 교동의 이름을 딴 경주 교동법주는, 술을 만들 때 쓰는 물마저 최 부잣집 우물물을 쓴다 하니 경주 교동법주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최 부잣집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겠다. 이 경주 교동법주를 처음 만든 이는 최 부잣집 가문의 인물 중에서도 조선 숙종 때 궁중 음식을 관장하는 사옹원(司饔院)의 참봉을 지낸 이였다 하니 맛에 기품을 담기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을지! 미황색의 빛깔과 향긋한 단맛, 그리고 약간의 신맛이 더해진 이 법주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경주 법주’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하니 주의하자.

 

괄목상대, 장원급제 한 듯 눈이 번쩍 뜨이는 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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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룡포 시장 안에서는 과메기를 건조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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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메기는 신선한 야채에 싸 먹을 때 가장 맛있다. 

옛날 옛적, 한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고 있었더란다. 주머니 형편이 썩 좋지 않았던 선비의 배에서 주린 소리가 점점 커져 가는데 이게 웬걸, 방풍림에 청어 한 마리가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아마 어부들이 해안에서 그물을 털다 그 중 한 마리가 잘못 튀어 온 모양이었지만 선비에게 그런 것은 썩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해풍을 맞으며 얼고 녹기를 반복한 청어의 맛은 그야말로 천상의 맛! 쫀득하고도 고소한 그 맛이 어찌나 뛰어났던지, 선비는 집에 돌아가서도 청어를 겨울 해풍에 건조해 먹었다 한다. 게다가 청어 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선비는 덜컥 장원급제를 하고 말았으니, 이것이 바로 ‘장원 급제의 맛’, 구룡포 과메기다. 

과메기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이야기다. 과메기의 유명세 뒤에는 포항시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공무원들은 전국을 누비며 직접 판촉 활동을 벌였고, 행사장마다 과메기 시식 코너를 마련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과메기 덕장 시설의 증설과 과메기 연구 센터의 건립까지, 과메기를 향한 이들의 노력과 성공신화 또한 눈을 비비고 다시 볼만한 놀라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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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없는 음식은 없습니다. 눈을 조금 더 크게 뜨고, 귀를 기울인 채로 음식을 맛보는 것은 어떨까요. 분명 음식 안에 담겨 있는 시간과 손길들이 말을 걸어 올 것입니다.

트래블투데이 박선영 취재기자

발행2019년 09월 30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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