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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익릉] 천연두를 앓았던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광성부원군 김만기의 딸인 인경왕후(仁敬王后, 1661~1680년)는 조선 제19대 임금 숙종의 원비이다. 그녀의 숙부는 《구운몽》, 《사씨남정기》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서포 김만중이다. 아버지 김만기, 김만중 형제는 조선 중기 예학(禮學)의 대가 사계 김장생의 종손으로 인경왕후는 당대 최고 문인 집안의 규수였다. 1661년에 태어난 인경왕후는 1671년 숙종의 세자빈에 책봉되지만 안타깝게 천연두를 앓다가 20세에 일찍 세상을 떠나 오늘날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숙종의 다른 여인들에 비해 생소한 인물이다. 

                    
                

그녀의 죽음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

  • 인경왕후는 숙종의 원비이며 천연두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인경왕후는 숙종의 원비이며 천연두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1674년 현종이 승하하자 숙종은 왕위에 올랐고, 인경왕후는 왕비가 되었다. 하지만 숙종이 즉위한지 6년 만인 1680년 10월 그녀는 천연두 증세를 보이며 앓기 시작한다. 숙종실록 10월 18일 인경왕후의 증세에 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중궁(中宮)이 편찮은 징후가 있었는데, 증세가 두창(痘瘡) 병환이었다. 그때 임금도 또한 아직 두창을 앓은 적이 없었으므로, 약방(藥房) 도제조(都提調) 김수항(金壽恒)이 청대(請對)하여 임금이 다른 궁궐로 이어(移御)하기를 청(請)하니, 임금이 이것을 허락하였다.
<숙종 10권, 6년(1680년 10월 18일)>
 
그때 중궁(中宮)이 두진(痘疹)을 앓았는데, 증후(證候)가 분명해지자, 임금이 드디어 자전(慈殿)을 받들고 창경궁(昌慶宮)으로 이어(移御)하였다.
<숙종 10권, 6년(1680년 10월 19일)>
 

  • 익릉은 서오릉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익릉은 서오릉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추억 속으로 사라진 비디오테이프의 오프닝 멘트에 등장하는 호환마마(虎患媽媽)가 무섭긴 하였나 보다. 인경왕후가 천연두 증세를 보이자 숙종은 거처를 창경궁으로 옮긴다. 인경왕후 또한 철저히 격리된 상태였는지 그녀가 떠난 10월 26일까지 별다른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2경(二更)에 중궁(中宮)이 경덕궁(慶德宮)에서 승하(昇遐)하였다. 그때 두 대궐(大闕)이 서로 통(通)할 수가 없어서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 경덕궁(慶德宮)의 흥화문(興和門) 밖에 있었다. 비변사(備邊司)에서 글로 승정원(承政院)에 보고하기를,
“내전(內殿)의 증후(證候)가 어제 밤부터 기침[咳嗽]으로 숨이 차서 헐떡거리고 힘이 없으니, 증세가 십분 위중(危重)합니다. 모름지기 이러한 뜻을 계달(啓達)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니,
승정원에서 즉시 승전색(承傳色)을 불러서 장차 위에 계문(啓聞)하려고 하였으나, 임금의 건강이 며칠 전부터 편치 못하고, 야간(夜間)에 또 구토(嘔吐)하는 증세가 있었기 때문에 즉시 고하여 알리지 못하고, 먼저 자전(慈殿)에게 고하였다. 한참 있다가 약방 제조(藥房提調) 영의정 김수항·좌참찬(左參贊) 여성제(呂聖齊)·도승지 홍만용(洪萬容)이 궐문(闕門)을 열고 들어가기를 청하고, 병조 판서 정재숭(鄭載嵩)도 또한 함께 대궐 안으로 들어가니, 입직(入直)하던 관원이 모두 모였다.
<숙종 10권, 6년(1680년 10월 26일)>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기록이다. 대신들은 인경왕후의 죽음보다는 몸이 아픈 임금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하는가를 더 고민하는 모습이다. 또한, 몸이 정말 아팠던 건지, 천연두가 너무 무서웠던 건지 숙종이 인경왕후의 병세가 어떤지 살펴보거나 찾아간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 당시 자세한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부인에게 보인 숙종의 태도는 조금 아쉬운 면이 있다. 숙종과 인경왕후 사이에는 두 명이 공주도 있었다고 하는데 세상을 떠나는 인경왕후의 마음엔 분명 섭섭함이 있었을 것이다.

지석영의 종두법이 일찍 도입되었다면 살 수 있었을 인경왕후는 20세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만약 그녀가 살아서 숙종의 원자를 생산하고 궁중의 중심을 잡았다면 조선 정치사의 혼란을 막을 수 있지는 않았을까? 훗날 숙종의 여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조선을 뒤덮은 당쟁이 인경왕후의 죽음을 더 안타깝게 느껴지게 한다.
 

[트래블아이 왕릉 체크포인트]
숙종의 명릉(明陵)과 함께 서오릉 내에 함께 있는 익릉(翼陵)에 인경왕후는 홀로 잠들어 있다. 계비인 인현왕후, 인원왕후와는 명릉의 한 능역 내에 있으면서 원비인 인경왕후와는 울창한 숲을 사이에 두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니 ‘쳇, 호환마마가 두려워서 죽어서도 부인하고 떨어졌나’ 하는 괜한 심술을 부려본다.
하지만 익릉에 들어서면 그 심술이 조금 누그러진다. 익릉은 서오릉의 능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조성되었다. 홍살문에서 봉분까지의 거리도 제법 길어 능역이 전체적으로 뻥 뚫린 시원한 느낌을 준다. 다른 왕비들의 능과 비교해도 그 규모와 아름다움이 별로 뒤처지지 않으니 인경왕후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것 같기도 하다.
봉분은 난간석으로 둘러져 있으며 병풍석은 생략하였다. 난간석에 12간지를 글자로 새겨놓은 모습이 특이하다. 그 밖의 능제는 기본적으로 임진왜란 이후의 양식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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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5년 11월 24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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