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홀로 떠나는 배낭여행이었다. KTX를 타고 서울역에서 두 시간 사십 분. 부산이라는 도시는 언제 와도 참 묘하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목에는 DSLR 카메라를 메고 있는 내 모습은 자갈치 시장에서 이미 멋쩍게 느껴졌기에, 이번에는 휴대 전화와 카메라를 배낭에 집어넣은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산에 올 때마다 들러 보자고 다짐했었는데, 해수욕장에서 놀다가 돼지국밥이나 밀면을 먹는 게 목적인 일행들의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되었던 발걸음이었다. 번화한 거리 너머로 ‘보수동 책방 골목’이라는 기다란 간판과 함께 양 팔로 책을 한 아름 들고 있는 남자의 황동상이 보였다. 자갈치 시장에서 걸어서 십여 분. 드디어, 나는 아날로그의 골목에 들어섰다.
사진을 취미로 삼은 지도 십 년 쯤 된 지금, 나날이 놀라운 성능의 카메라들이 출시되고 있는 가운데서 나는 구형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하나 구입했다. 옆으로 길쭉한 직사각형의 이 폴라로이드는 흑백으로 된 사진을 찍어낸다. 포토샵까지 쓸 필요도 없이 인터넷 사진첩의 보정 버튼 하나만 누르면 사진을 흑백으로 바꿀 수 있는 시대에 쓸데없이 비싼 돈을 주고 사고 있다고 아내도 친구들도 바보 취급을 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몇 년 전부터 나는 난데없는 향수병을 앓고 있었다. <써니>나 <건축학개론>, <응답하라 1997> 같이 복고를 코드로 한 콘텐츠들이 유행을 타기 시작해서였을까. 갑자기 어렸을 때 살던 동네가 보고 싶어 수십 년 만에 차를 몰아갔더니, 그곳에는 으리으리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아, 그때 내가 얼마나 후회를 했던가! 칠이 다 벗겨진 초등학교 정문이나 구슬과 딱지, 프라모델까지 팔던 문방구 같은 것들은 이미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진 지 오래였다. 세월이 지나면 모두 자연스레 변해가기 마련인 것을, 내 추억을 돌려 달라 누구에게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다. 너무 늦게 과거를 돌아보려 했다는 후회와 함께 아날로그에 대한 한층 더 큰 그리움이 몰려 왔다.
“엄마, 이것 봐요! 영심이!”
낯익은 이름에 뒤를 돌아보니 여대생으로 보이는 아가씨 하나가 만화책 한 권을 가리키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포켓몬스터> 세대인 줄로만 알았더니 우리 세대에나 유행하던 <영심이>도 알고 있나보다.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모녀가 사라진 뒤, 나는 그 여대생이 가리켰던 <영심이> 만화책을 집어 들었다.
부모님들 몰래 드나드는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기에 시장골목 안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던 만화 책방. 나는 매일 방과 후면 그곳에서 퀴퀴한 남자 애들과 몰려 앉아 있었다. <마징가 제트>나 <쿤타맨>같은 만화책을 읽으면 나도 정의의 사도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이 어느 새 삼십 여 년 전의 일이 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지금 내 손에 들린 이 <영심이>는 어느 구석에 숨어 세월을 품고 기다렸던 것일까. 어딜 봐도 빳빳하다고는 해 줄 수 없는 낡은 종이에서 나는 젖은 나무 같은 냄새에 마음이 편안해져왔다. 책방 지하에 있는 북 카페에 앉아 <영심이>를 뒤적이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추억이 그리도 반가웠는지, 꿈속에는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왔다. 찐 옥수수가 든 바구니를 한 쪽 옆구리에 든 어머니가 땜방 자국이 있는 내 까까머리를 연신 쓰다듬으셨다. 치직거리는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마루에 뒹굴다가, 나는 또 잠이 든다. 그리고 깨어보니 다시 북 카페 안이었다.
<80일 간의 세계일주>, <운수 좋은 날>, <달과 6펜스>와 같은 우리 세대의 필독서들이 새겨진 돌바닥을 밟다 보니 <마징가 제트>가 그려진 빨간 가방이 놓인 집도 나왔다. 하염없이 걷다가, 갑자기 정신이 든 사람처럼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영심이>를 샀다.
책방 골목을 떠나기 전, 나는 이 향기로운 골목의 사진을 남기려 DSLR을 꺼내다가 고개를 저었다. 선명하고 화려한 것은 이 골목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이 골목을 담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조리개도, 촬영 모드 설정 기능도 없는 그 흑백 폴라로이드였다. 하얀 필름 종이에 풍경이 새겨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삼십 년 전의 어머니와 함께 걷던 바로 그 골목이 환상처럼 새겨지는 그런 상상을 했었다.
방학 끝물, 다음 학기가 마지막인 친구들끼리 모여 특별한 기억을 만드는 계획을 세우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대학생으로 맞는 마지막 방학인 만큼 정말 특별한 계획이 필요했는데, 바다도 계곡도 지겨울 정도로 다녀왔기에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야, 정말 이제 해외로 나가지 않는 이상 할 게 없는데?”
맞는 말이었다. 우리처럼 많이 놀러 다닌 대학생들도 없을 것이다. 전국 각지의 명소란 명소, 축제란 축제는 다 돌아다니는 우리들 네 명에게는 이미 국문과 유랑단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우리의 고민은 하루 종일 이어졌다. 마땅히 끌리는 곳이 없어서 애를 먹고 있는데 한 명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 하나 있다. 우리가 안 해 본 거. 자전거 여행은 한 번도 안 해 봤잖아.”
“자전거 여행? 그건 제대로 가려면 한 일주일 잡고 가야 될 텐데, 우리한테는 이번 주말 밖에 시간이 없잖아.”
게다가 학교 근처에서 모두 자취를 하고 있는 터라 자전거를 소지한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자전거라는 말에 다들 귀가 솔깃해졌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의 접이식 자전거 이후로, 자전거를 타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자전거 여행은 제치고서라도, 자전거를 빌려서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있는지를 찾아내는 데에 열을 올렸다.
그렇게 고민한 결과 선택한 곳이 소래습지생태공원이었다. 폐염전과 염전 저수지, 그리고 풍차를 함께 볼 수 있는 자전거길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바로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 대학생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은 행동 개시를 서둘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주말은 정말 맑았다. 너무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서 그런지 처음에는 중심을 잡기도 힘들어하는 친구도 있었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네 명 모두 신나게 소래길을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길이라더니, 볼거리가 많았다.
넓은 들판 위에 빨간 풍차 세 대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을 보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전거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 큰 청년 넷이서 풍차 앞에서 포즈를 잡고 있는 모습이 우리 스스로도 우스워 한참을 웃었다. 커플 단위로 사진을 찍으러 나온 사람들도 많았고, 체험학습을 나온 것 같은 어린 애들의 모습도 꽤 많이 보였다. 염전에 파란 하늘이 그대로 비치는 모습을 보았을 때에는 다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난 사실 여기 걸어서는 몇 번 와 봤는데, 걸을 때랑은 기분이 완전히 다르네.”
“맞아. 보이는 게 완전히 다른데?”
정말이었다. 나도 새내기 때 즈음에 혼자 소래길을 걸으러 나와 본 적이 있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소래길은 또 느낌이 달랐다. 걸을 때에는 꽃 하나, 풀 하나가 다 특별하게 보였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니 그 꽃 하나와 풀 하나가 포함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더 넓게, 더 멀리 볼 수 있게 된 것 같은 기분에 왠지 뿌듯해졌다. 좁은 시선으로 보는 풍경도 아름답지만, 넓은 시선으로 보는 풍경도 특별했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다들 말이 없어졌다. 아마 다들 머리가 복잡할 것이다. 사실 어디론가 떠나는 일에 대해 우리의 마음이 급해진 것은, 앞으로 이렇게 추억을 만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압박감 때문일 것이었다.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데에만 열중하던 우리들이었는데 이제는 어느 새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말은 안 하지만 다들 졸업 후에 무엇을 하며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많았고, 이미 고시나 토익 준비 때문에 평소에는 집 밖으로 잘 나오지 못하는 친구들도 몇 있었다.
부인교에 걸린 구름 앞에서 우리는 하나같이 멈춰 섰다. 때마침 패러 글라이드 하나가 바람을 타고 미끄러져왔다. 파란 하늘 위에 노란 패러 글라이드가 미끄러지는 모습에 모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문득, 풍차 근처에서 연을 날리고 있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들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 연에 꿈을 매달게 될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도중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한 마디가 흘러 나왔다.
“딱 오 년 뒤에, 다들 남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고 여기 다시 오자.”
어울리지 않게 웬 진지한 말이냐며 빈축을 샀지만, 친구들 모두 멋쩍게 웃는다. 손을 모아 파이팅을 외치고 돌아오는 길,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진녹색 군단이 한차례 지나간 자리에는 희미하게 짭조름한 냄새가 났다. 고된 훈련으로 나는 땀 냄새인지 순식간에 불어온 습한 바람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남자는 오늘도 구부정한 모습으로 연필을 깎는다. 그가 연필을 깎으면 늘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흑심이 길쭉하게 솟아오를 때까지 사각사각 말없이 연필만 깎는다.
남자와 나는 미군부대 PX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남자는 초상화를 그렸고 나는 그 옆 화방에서 그림에 필요한 물건들을 팔았다. 물론 손수건이나 비상약, 껌 등 잡다한 물건을 팔기도 하였다. 사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담배나 껌, 손수건을 찾는 군인들이 많았고 대부분은 손수건이나 액자에 여자 친구 사진을 담기 위해 들르는 사람들이 많아 가게의 정체성을 잃은 지는 오래다. 하지만 꼬박꼬박 남자는 이곳을 화방이라고 불러주었다.
남자는 항상 뭉뚝한 연필을 들고 그림을 그렸다. 남들이 벙어리 환쟁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그의 무심함은 말 안 해도 그만이다. 하지만 그는 꽤 자상한 성격이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미군들이 자신의 여자 친구 사진을 들고 와 초상화를 부탁하면 늘 사진보다 조금 더 예쁘게 그려주었으니까.
남자는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졌다. 그래서일까 남자는 갈색 빛을 닮았다. 그는 초상화를 그리고 시간이 남을 때면 틈틈이 나무를 그렸다. 남자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왠지 아무도 찾지 않는 늙은 나무를 보는 것 같았다. 초라하지만 굳은 심지가 느껴진 달까. 남자가 그리는 나무는 잎이 없고 푸르지 않은 발가벗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를 닮은 아주 진한 갈색 빛으로 나무를 단장했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꾸부정하게 앉아 붓을 빨았다. 그를 보면 그가 그리던 고목이 떠오른다.
내가 남자에게 초상화는 예쁘게 그려주면서 나무와 여인들은 투박하게 그리느냐고 핀잔을 주면 특유의 서글서글한 웃음만 짓는다. 얇은 종이가 구겨지듯 그의 눈 주위에 주름도 함께 구겨진다. 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림이나마 좀 화려하면 어때? 원래 글이나 그림이나 다 환상 아닌가? 꿈도 꼭 그렇게 소박하게 꾸어야 겠냐는 말이야. 기왕 나무를 그릴 것이면 잎도 무성하고 큰 정원도 있고 정원을 가꿔주는 정원사도 있으면 좋겠지. 그리고 큰 나무 앞에 서있는 여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여자가 부드러운 실크로 만든 옷을 입고 서있으면 더 좋고!”
나는 제법 똑부러지게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남자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나를 쳐다보지 않은 채 말했다.
“아기 업은 단발머리 소녀. 조잘대는 말들이 피어오르는 빨래터. 개울을 건너는 소년.
주변의 사람들을 보고 선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 그것뿐이지.
내가 생각하는 인간상이 그런 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나무는 그런 것이야.”
남자는 늙은 나목과 함께 할아버지와 손자,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인들을 그렸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했다. 고무신을 신은 단발머리 소녀와 소녀의 등 뒤에 업힌 아기. 그것이 남자의 그림이다.
남자의 연필이 다 되어갈 쯤이었다. 그가 돌연 이곳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나는 왜 이렇게 갑자기 결정해서 통보 하냐고 섭섭한 마음을 어조에 담아 강하게 말하였으나 남자는 갑자기 결정한 것도 통보하는 것도 아닌 것을 알고 있다.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그는 어디로 간다고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 것만 같았다. 그는 한 그루의 초라한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그곳에서 무심히 연필을 깎을 것이다.
그가 다시 돌아올 때쯤엔 새로운 연필과 지우개 그리고 붓을 선물해야겠다. 저만치 떨어져 한사코 거절하겠지만.
딱 한잔만 더 마시고 들어갈게. 누군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듯이 건넨 혼잣말이다. 벌 써 몇 병째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그는 되뇌었다. 마지막이라고. 남은 소주잔 이거 딱 한잔처럼 마지막이라고. 남자는 중얼거렸다.
남자는 어두운 실내 포장마차에 있었고 홀로 앉아있었다. 남자가 벌인 네 번째 실내 포장마차 사업장이었다. 매번 반짝 장사가 되다가 나중에는 파리만 날리는 쪽박집이 되기 마련이었다. 봄이 되면 꼭 가게를 빼줘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 돌아서는 건물주의 당부가 있던 날이었다. 그렇다고 남자가 성실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늘 좋은 재료를 위해 새벽시간을 아끼지 않았고 대박 집과 쪽박 집을 나름대로의 계산에 맞춰 비교도 해본 그였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무언가 승부수를 걸어야만 했다.
남자는 귀여운 딸아이와 예쁘고 상냥하던 아내를 생각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딱 한잔만 더 하고 들어갈게, 마지막이야.
반짝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부신 남자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식탁에는 콩나물국이 놓여있었다. 아내가 왔었나보다 생각했다. 남자는 하나부터 천천히 다시 시작해보기로 한다. 그동안 무엇이 문제였는지 재료인지 인테리어인지 품목선정인지. 무의식중에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틀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아내가 아침상을 다 차려놓고 나간 터라 더 이상 꺼낼 반찬이 없었음에도 남자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우연히 슬라이스 치즈가 눈에 띄었다. 술을 마시고 난 다음날 아침 느끼한 치즈를 먹는다는 것, 다른 날 같았으면 쳐다도 안보고 아내가 끓여놓은 콩나물국을 후루룩 마셨겠지만 남자는 치즈 한 장을 집어 들었다.
냉장고에 있어 차가운 치즈는 입안에서 쉽게 녹지 않았다. 중얼거렸다.
‘치즈가 따뜻했으면 좋겠어’
남자는 그 순간 낙뢰가 하늘에서 번쩍 치듯 치즈 하나면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의 사업 아이템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의 머릿속엔 온통 치즈 생각뿐이었다. 좀 더 체계적인 사업 구상을 하기 위해 남자는 임실로 향했다. 남자에겐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니까.
치즈 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공간. 그곳엔 치즈의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치즈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음식부터 맛과 발효과정까지. 남자는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 치즈 하나면 누구나 만족시킬 수 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년 봄이 되면 꼭 방 빼주셔야 해요.’
건물주가 이번엔 아내를 찾아간 모양이었다. 다시 한 번 귀여운 딸아이와 상냥한 아내를 생각했다. 남자는 성실하게 치즈로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을 떠올렸다. 치즈의 맛을 끝까지 살리며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차별화 된 음식들이 무엇인지를.
남자는 아이들을 위한 치즈 그라탱부터 미니 피자 그리고 치즈의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인 치즈케이크를 디저트로 만들기로 했다.
“다음 달도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지요.”
건물주가 웃으면서 재계약을 하러왔다. 남자는 더 이상 어두컴컴한 방에서 홀로 마지막을 되뇌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귀여운 딸아이와 상냥한 아내와 함께 식탁에 앉아있을 것이다. 오늘도 그의 가게에서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냄새가 난다.
한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빛처럼 어둑한 날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았다. 차마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가 없는 분이니까.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다가 조금은 진지하게 묵례를 했다. 가볍게 바람이 일자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내가 선생을 이토록 추억하는 건 선생에 대한 감사와 존경도 있겠지만 생각이 가진 무게와 선생이 늘 지니고 있던 칼의 무게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나라의 한 국민이었고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그가 그 기다란 칼 하나에 온 백성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야 했기에 그 짐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생각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하루에 수십 명 아니 수백 명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할 것이고 그것은 단 한 사람의 목숨이 아니라 이 나라 이 백성들의 목숨이고 이는 한 가정의 기둥의 목숨이기 때문에 늘 고뇌에 차있고 누구보다 두려웠으리라 생각한다. 눈을 뜨고 감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고 말 한마디에 수백만의 목숨과 나라가 달려있었기에 태산 같은 두려움이 물밀 듯이 밀려왔으리라.
그래도 그가 그의 삶을 다하는 순간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긴 칼로 누구를 벨 것인가. 내가 베고 있는 것이 적장의 목숨일까 혹 자신의 삶이 아닐까 선생은 하루에 수도 없이 고민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직분을 숙명처럼 고스란히 받아냈다.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다.
갑옷의 무게만큼이나 무겁고 고된 삶 때문에 선생은 지친 몸을 뉘일 때도 차마 그 짐을 내려놓지 못했다. 언제든 일어나 적과 맞설 수 있도록 갑옷을 입고 칼을 옆에 두었을 것이다.
날이 점차 밝아졌다. 조금은 무거운 바람이 일자 대나무 숲에서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늘 한적했다. 사람이 거의 없었고 조용했다. 짙은 안개가 발아래 깔린 것만큼 진중하여 숨소리 한번 내기가 조심스러울 정도다.
내가 가진 삶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가진 무게는 도대체 얼마나 되기에 이렇게 힘들어 하냐고 내 자신을 채찍질 하고 싶을 때 이곳을 찾곤 한다.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낼 때. 이곳을 찾아 그분을 생각한다.
한참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아무런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음에도 이곳을 찾으면 큰 위로를 받곤 한다. 그분의 칼을 보고 위로를 받는다.
날은 이제야 겨우 한낮의 빛을 찾았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요란한 벨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친구의 전화다.
“어디야? 지금 너희 집 근천데 나올래?”
“나 지금 아산이야.”
“너 또 현충사 다녀오는 길이야? 너도 참 대단하다. 사실 장소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매번 갈 때마다 새로워?”
“장소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니까. 네가 뭘 알겠냐.”
“학교에서도 존경하는 위인하면 한결같이 이순신장군이라고 쓰더니... 그래서 언제 올라오는데?”
“지금 가는 길이야.”
다시 이곳을 찾을 때에는 내 삶의 무게에 대한 답을 들고 오고 싶다. 그리고 선생과 함께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마음이 불안하다. 내가 로버트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3년 전. 로버트는 우리 학교의 교환학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인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온 나이기에 괜히 더듬더듬 말을 붙여 본 것이 인연이 깊어졌고, 우리는 어느 새 연인이 되었다.
창밖으로 로버트의 모습이 보였다. 성큼성큼 다가와 내 앞에서 환히 웃는다. 카페 안의 시선이 일순간 모두 나에게로 쏠리며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로버트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로버트 또한 그렇다. 우리 둘만 행복하면 다 괜찮은 거라 생각은 하고 있지만, 평생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나는 불안하다.
우리 둘은 아직 한 번도 다퉈 본 일이 없었다. 성격이 잘 맞아서이기도 하지만, 로버트가 상상 이상으로 나를 배려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남들의 시선이다. 영국 남자와의 연애에서 결혼생활까지를 그리고 있는 웹툰이 큰 인기를 끈 이후로 젊은 사람들의 시선은 눈에 띄게 부드러워 졌지만, 우리가 손을 잡고 길을 걸을 때면 어르신들이 눈을 흘기며 혀를 차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오랜만에 보는 정장 입은 모습이 낯설었다. 오늘 저녁에 로버트는 처음으로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 2년 넘게 사귀어 온 남자친구를 소개하겠노라 선언하고 집을 나왔는데, 그 남자친구가 미국인이라는 것은 아직 말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혹시 거리의 사람들처럼, 우리들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으실까.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내 선택에 불만이 없다. 행복하게 살 자신도 있다. 로버트는 나와 결혼 한 후에도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말했으므로, 지금 내 생활에서 많은 것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아이가 이런 시선을 견딜 수 있을까. 내가 눈 앞의 행복 때문에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테이블에 놓인 커피에는 입도 대지 않고 입술만 물어뜯고 있자, 불안한 마음을 눈치 챈 듯 로버트가 내 손을 잡았다.
“걱정, 안 돼.”
‘그럼, 안 되지. 우리 둘은 잘 헤쳐가 갈 수 있을 거야.’하고 나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다.
“점심으로는 뭐가 좋을까.”
잠시 고민하던 로버트가 좋은 생각이 났단다. 그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부대찌개 집이었다. 정장을 입고 부대찌개를 파는 식당에 올 줄은 몰랐는데, 로버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기세 좋게 이모를 부르며 부대찌개 2인분을 시킨다.
아직 한국어가 서툴지만, 그는 어디에 가서도 기가 죽지 않는다. 자라온 환경의 차이 탓일까. 나도 내향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걱정이란 게 없어 보이는 로버트를 보면 부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찌개가 끓자 로버트가 내 앞의 접시를 가져가 찌개를 덜어 주었다. 그런데 내 몫의 접시에는 햄만 가득 담겨 있었다. 건너다보니 로버트의 접시에는 김치만 담겨 있다. 의아한 내 표정을 본 로버트가 웃었다.
“혜연은 햄을 좋아하고, 나는 김치를 좋아해. 그래서 나는 부대찌개가 맛있어.”
문득 한국 전쟁 이후 이곳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부대에서 나온 햄을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고추장이나 김치 등의 재료를 넣어 끓인 것이 부대찌개라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버트는 마냥 즐거워 보였다.
처음에는 김치는 물론이고 라면도 잘 먹지 못하던 로버트인데, 매일같이 나와 함께 있다 보니 어느 새 김치 국물에 밥도 비벼 먹을 정도로 매운 맛에 익숙해졌다. 김치에 파를 얹어 먹는 모양새가 이제는 제법 한국인 같기도 했다.
“맛있을 거야, 앞으로도.”
왠지 경상도 남자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것은 시골아이가 서울깍쟁이 여학생을 동경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멋들어진 사투리를 쓰고 무뚝뚝한 말투와 행동 속에 배어 있는 세심함이랄까? 한껏 부푼 기대를 안고 떠난 첫 경상도 여행길이다. 포항에 있는 친구에게 내가 내려가니 환영의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으라고 큰소리를 쳤다.
버스에 몸을 싣고 유유히 안내팜플랫을 열어보고 있는데 친구한테 문자가 왔다.
‘미안, 나 갑자기 세미나가 잡혀서 나대신 내 친구 보냈어. 남자애야.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소개팅이라고 생각해! 이 언니의 예기치 않은 깜짝 선물이다. 좋은 시간 보내!’
소개팅? 좋은 시간? 이걸 말이라고. 황급히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는 무심하게 신호음만 연결할 뿐이었다. 다시금 차를 되돌릴 수도 없고 1박 2일을 혼자 보내기도 겁이 났던 나는 일단 남자가 나와 있을 것이라는 포항터미널에 도착했다.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왔다.
“김수정씨?”
“아, 네.”
이 남자인가보다.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포항터미널에서 갑작스럽게 만난 남자라니.
“연주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경상도 남자한테 관심이 많으시다고 에스코트 좀 잘하고 오라고 하던데요?”
“아. 연주가 그래요? 아. 뭐..”
연주 이 기집애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나보다. 그리고 이 남자. 낯도 안 가리고 싹싹한 면이 있다.
“배 안고프세요? 포항 오셨으면 과메기 정도는 먹어줘야 되는데, 드셔보셨나 모르겠어요.”
“아. 한번인가? 자주 먹어보지는 못했어요.”
“그래요? 그럼 제가 제대로 먹는 법 알려줄게요. 가요.”
그렇게 처음 본 남자와 처음 와본 곳에서 점심을 먹으러 앉아있다. 죽도시장에서 가장 맛있는 집이라며 남자의 추천으로 들어온 집이다. 주문한 과메기가 나왔고 남자는 김과 과메기, 갖가지 채소들을 얹더니 ‘아’ 해보라고 했다. 괜찮다는 대도 자꾸만 ‘아’해보라고 했다. 쌈이 풀어진다나. 그렇게 수줍게 받아먹은 과메기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비리지도 않았고 고소한 맛이 감돌았다.
“어때요? 맛있죠?”
“네. 비리지도 않고 생각보다 고소하네요.”
“그렇다니까요. 제가 황금비율로 싸드려서 그래요.”
남자는 그러면서 싱긋 웃는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후 일일 가이드로 일임한 남자를 따라 포항 이곳저곳을 다녔다. 남자는 경상도 남자답게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다정하고 세심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붉은 노을이 하늘을 수놓았다. 일출 명소인줄 알았는데 해가 저무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저,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이렇게 일일 가이드도 해주시고. 이제 그만 들어가 보세요.”
“뭘요. 저도 포항 여행 제대로 했는데요. 참. 내일 오전에 해돋이는 보시고 가셔야죠? 아침 일찍 여기로 나올게요. 해돋이 보고 가세요.”
“네? 아. 괜찮은데.”
“무슨 말씀이세요. 호미곶와서 일출 안보고 가면 여기 왔다고 명함도 못 내밀어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내일 6시 10분까지 나오겠다며 내일 보자고 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호의인가. 아니면 무엇일까.
다음날. 약속했던 시간이 약 30분이 남았음에도 모든 준비를 끝냈다. 애꿎은 시계만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드디어 6시. 호텔 로비를 서성이는데 남자가 나와 있다. 언제부터 와 있던 건지 코끝이 살짝 빨갛다.
남자는 곧 해가 뜬다며 슬며시 내 손을 잡고 일출 명소로 뛰었다. 호미곶의 상생의 손 사이로 붉은 해가 솟아올랐다. ‘와.’ 속으로 감탄을 삼키고 있는데 남자가 말을 걸었다.
“멋있죠?”
“네. 멋있네요.”
“그럼, 나는 어때요?”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수줍게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79년생 여자가 티켓의 자리표를 보며 서성인다. 열차 안에는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건 아니었음에도 여자는 쉽게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때 맞은편에서 한 여자가 걸어왔다. 86년생 여자이다. 둘은 한 지점에서 만났다. 이 여자의 행선지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쩐지 춘천까지 함께 앉아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어색한 미소를 주고받으며 각자 자리에 앉았다. 둘은 서로를 탐색했고 왠지 모를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두 정거장쯤 지난 후였을까 젊고 앳된 모습의 90년생 여자가 그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어쩌다 이 셋은 마주 보며 앉게 되었다.
우연일까. 세 여자 모두 홀로 춘천으로 떠나는 모양이었다. 79년생 여자는 책을 들고 있었고 86년생 여자는 거울만 들여다보고 있다. 90년생 여자는 스마트폰으로 연신 메시지를 날렸지만 셋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심 신경이 쓰인 79년생 여자가 연장자답게 먼저 말을 꺼냈다.
“춘천까지 가시나 봐요?”
79년생 여자가 입을 떼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두 여자가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다시 어색함이 짙은 안개만큼이나 무겁게 깔렸으나 이전만큼은 아니었다.
한번 말을 붙여봐서일까 그 다음부터의 질문은 어렵지가 않았다. 세 여자는 각자 통성명을 하고 춘천으로 떠나는 여행에 대해 질문을 했다. 왜 혼자인지. 다른 사람이 홀로 떠나는 여행에 대해 세 여자는 나름의 추측을 던졌다. 실연을 당했나? 각오를 다지기 위해 떠나는 건가? 각자 조금의 차이는 있었지만 세 여자의 대답은 같았다.
‘젊었을 때 언제 한번 혼자 여행을 떠나보고 싶었어요.’
언젠가부터 춘천으로의 여행은 청춘 그리고 낭만이 되어버렸다. 누군가가 지정한 것이 아님에도 세 여자의 머릿속엔 춘천 이코르 청춘이었다.
이번엔 가장 젊은 90년생 여자가 입을 떼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함께 1박 2일을 보내자는 것이었다. 홀로 떠나는 여행을 계획한 그들에게는 다소 파격적인 제안이었음에도 거절하기가 미안해서였는지 그녀들은 쉽게 수락을 했다.
여행이 주는 맛이 이런 것일까? 생판 남이었던 사람과의 1박 2일의 여행이 마치 오래도록 알고 지내던 사람과의 여행처럼 편안했다. 이곳이 춘천이어서 그런 것인지 세 여자의 취향이 우연히 맞아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셋은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다.
셋은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숙소로 돌아왔다. 반나절의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이라서 그럴까 세 여자는 조금 센티멘털해졌다. 왠지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해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였으니까.
86년생 여자가 오늘 찍은 사진들을 넘겨보면서 말했다.
“사실 난 내가 정말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인 줄 알았어. 늘 가던 편의점만 가고 늘 만나던 사람만 만나왔었으니까. 그런데 누가 알았겠어?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과 밥 먹고 차 마시고 웃고 떠들고. 놀라운 하루야.”
가만히 듣고 있던 79년생 여자도 거들었다.
“그러게. 사실 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마음 추스르려고 온 여행이었어.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거든. 그리고는 다시는 결혼 같은 거 안 한다고 소리소리 지르고 무작정 짐을 싸서 나오긴 했는데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더라. 외롭기도 했고. 이제 다시는 누군가를 만날 수 없겠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것도 아닌가 봐. 이렇게 우리 셋이 있는 걸 보면.”
79년생 여자는 자신의 속 이야기를 털어놓고 자신도 깜짝 놀랐다.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파혼이야기까지 털어놓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녀였다. 아무렴 어떤가. 왜 그런 이야기까지 내게 하느냐고 부담스러워하는 이도 없었고 안쓰럽거나 가여워하지도 않는 둘이었으니까 괜찮았다.
세 여자가 오늘의 여행을 뒤로하고 지속적인 연락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세 여자는 말없이 서로의 등을 토닥였고 그 토닥임이 무슨 의미인지는 그녀들만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