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얼룩진 곳에 평화가 깃들길
- 강원도 고성군 -
총성이 멎은 자리에는 여전히 회색빛 얼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눈물로도 씻을 수 없는 통한의 아픔이 가슴 한편을 저릿하게 만들고 단단히 못 박힌 마음들은 굵은 쇳덩이로 서로를 겨냥하기에 바빴습니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요즘, 6.25 그 시련의 역사 속에 신음하던 지난날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부르짖던 마음을 생각하며 <트래블아이>가 제안하는 오늘의 미션‘안보관광 속에서 평화의 씨앗심기’
동족상잔의 가슴 아픈 비극이 서린 이곳. 여전히 삼엄한 경계와 안보교육을 통해 냉전중임을 실감할 수 있다.
“총성은 멎었지만 아직도 경계가 삼엄하네요. 그래도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전쟁과 안보에 관심을 갖는다는 하나의 증거겠지요?”
“그래.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안보교육을 통해 전쟁에 대한 현실과 나라 안보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도 평화 통일을 기원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단다.”
6.25전쟁체험관, DMZ박물관, 통일전망대 등은 유일한 분단국가의 현실을 보여주고 전쟁 발발 전후의 모습을 극명하게 제시한다. 그곳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어렸을 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도 부르고 통일이라는 주제로 글짓기도 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그런지 이곳이 우리나라 사람에겐 참 남다른 공간인 것 같아요.”
“그래 맞아. 휴전선을 사이로 남북이 갈라져 있는 분단의 아픔과 전쟁이 남긴 상처와 비극을 좀 더 자세하고 깊게 느낄 수 있단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이산가족 발생,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 불구가 된 가장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단지 사진으로만 보는 것인데도 당시의 긴장감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것 같아요.”
“전쟁은 어린아이부터 청년들까지 빗겨가지 않고 참혹함을 가져다주었어. 기념관에 들어서면 당시 군 생활과 민통선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인형으로 재현한 모습도 생생하게 볼 수 있단다.”
서로가 마주보고 환하게 웃는 그날을 바라본다. 서로에게 겨누었던 가시 박힌 마음은 이제 거두고 그곳을 서로의 손으로 어루만져 볼 날을 바라고 또 바라본다.
“나무에 종이로 된 나뭇잎들이 많이 달려있어요. 자세히 보니 무슨 문구가 적혀있네요."
"이건 평화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키우는 나무란다. 각자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한 글자 정성스레 적어놓은 거지. 문구는 달라도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은 모두 같을 거란다. 여기에 평화의 씨앗을 심어보렴."
날이 좋으면 통일전망대에서 북한 땅을 자세히 바라볼 수 있다. 손이 닿을 듯 말 듯한 고향땅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염원이 산봉우리 사이사이마다 새겨져있다.
“뭐가 보이니? 저기 산봉우리 하나만 넘어가면 바로 북한군 초소가 보인다는 구나. 북한 사람들이 보이니?”
“북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라도 고향땅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에 큰 위안을 가지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찡해요.”
북한 주민들의 생활용품이 전시되어있다. 우리와 별 다를 것이 없는 생활용품을 전시관으로 바라보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룡성콜라, 개성소주 등 북한물품들을 직접 보니까 신기해요! 그러고 보면 북한 사람들도 우리랑 크게 다르지 않나봐요. 전 북한사람들이라고 하면 멀게만 느껴졌었거든요.”
“그럼, 다르지 않고말고. 이렇게 서로를 알아가면서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이 바로 평화의 씨앗의 한 단계 자라나는 결과가 아닐까?”
어릴 적 감자 고구마를 캐며 실개천에서 멱을 감던 그곳, 정지용의 시에서처럼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자신이 살던 고향 땅을 눈앞에 두고도 밟지 못하며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가슴에 피멍이 들도록 주먹으로 내리쳤을 이산가족들을 생각하면 통일이 절실한 것 같아요.”
“그렇지? 그 무엇보다도 가족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제일 가슴 아프구나. 한 할아버지께선 죽기 전에 고향땅 한 번 밟아보고 죽는 것이 소원이라며 눈물을 훔치시더구나.”
고성이야말로 분단의 아픔이 가장 크게 서려있는 곳이라 하겠다. 남북이 갈라진 것 도 모자라 도까지 갈려 분단군으로 불리고 있으니 말이다.
“고성과 분단은 참 떼려야 뗄 수가 없는 단어란다. 그래서 더욱 평화와 통일을 희망하는 곳이기도 하지.”
“회색빛으로 물든 이곳도 많은 사람들의 평화의 씨앗으로 점점 밝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군 생활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만큼 전쟁과 휴전은 우리와 동떨어진 먼 이야기가 아닌 현실임을 자각해야 할 때이지요. 정전 60주년을 맞이한 올해. 모두 나라의 안보와 평화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트래블아이>가 제안한‘안보관광 속에서 평화의 씨앗심기’가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여러분의 마음과 함께 하면서 말입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길
- 전라남도 장흥군 -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고 한다면 ‘잘 키운 재래시장 하나, 열 마트 안 부럽다’는 말도 가능하겠습니다. 정남진 장흥토요시장을 보면서 드는 생각입니다. 지근거리에는 동학농민들이 호남지방에서 끝까지 버티다 장흥에서 최후나 다름없는 일전을 치렀던 석대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토요시장만 둘러보고 올 일도 아닙니다. 성을 에워싸고 도는 예양강과 함께 어우르는 산 과 들 등 자연환경을 돌아 볼 수 있는 ‘천지인(天地人) 둘레길’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도 바로 그것입니다.
장흥군이 토요시장에 이어 야심차게 선보인 길 ‘천지인 둘레길’은 장흥읍사무소 뒤쪽 탐진강변 홍살문에서 시작된다.
“이제 흘러간 영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20년 전 재래시장 모습이 있다고 해서 장흥 토요시장을 보러 왔는데, 이 근방에 ‘천지인 둘레길’이 있다고?”
“맞아. 장흥읍성 터를 중심으로 탐진강 수변공원, 동학공원을 연결시켰어. 이 벽화를 따라 산길로 들어서면 바로 삐비정과 만난다는데, 다음 이야기들이 궁금하지 않아?”
장흥읍성은 능선을 따라 흙과 돌로 쌓은 포곡식 산성인데 일부 구간은 자연 그대로 낭떠러지를 성벽으로 활용해 아찔함도 느껴진다고.
“성곽을 걷는데 위험하지는 않을까?” “나무로 안전판을 이어 놓았잖아.”
“아! 동쪽과 남쪽, 북쪽에 성문이 있었는데, 어디로 간 거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것 같은데, 우리가 제대로 잘 찾지 못하는 걸까?”
평지의 성곽과 달리 산길을 오르내리는 북문 쪽은 산길을 오르내리는 흙길이다. 이 길 위에서 꼭 해봄직한 옛 풍습이 있다는데?
“길을 걷다보니 정말 건강에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니? 평지의 성곽과 달리 산길을 오르내리는 덕분일까?”
“글쎄. 하지만 이 길 위에서는 옛 풍습이 하나가 있어. 나를 따라해 봐. 자! 이렇게 돌을 머리에 이고 성 밟기를 하면 건강해진다는 속설이 있다는데, 한번 해봐.”
동백나무 터널을 지나면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진녹색의 동백나무가 계절의 변화를 일러준다. 급기야 발견한 돌로 쌓은 석성, 과연 어떤 이야기를 지니고 있을까?
“경사가 다시 가파르다 싶더니 이 길이 우리에게 장원봉을 보여주려고 했나보구나. 여기 지명 유래가 적혀 있어.”
“어디 보자. 지금의 경찰서 뒤편 마을이 장흥 위씨 마을이었다는군. 여기에 사는 위원개, 위문개 두 형제가 장원급제를 해서 장원봉이라고 했대. 두 사람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장원봉을 지나 동학전망대로 가는 길은 장흥읍내와 억불산을 보며 걷는다. 왼편으로 보이는 억불산의 자태를 보면 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을 듯한데?
“장흥읍과 안양·용산면 경계에 우뚝 솟아 있는 저 봉우리 말이야. 다소곳한 며느리를 닮고, 산의 능선이 며느리의 치맛자락 같지 않아?”
“저게 바로 며느리바위야.” “그렇구나. 왠지 애달픈 이야기도 스미어 있을 것 같아.”
마삭줄이 지천인 봉우리에 놓인 며느리바위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 마음씨 착한 며느리와 구두쇠 시아버지 이야기, 이는 가련한 동학농민의 사연과도 꼭 닮았는데.
“하루는 시아버지가 시주하러 온 스님을 내쫓았어. 이를 본 며느리가 대신 사과하며 시주를 했더니 그 스님이 ‘마을에 큰 홍수가 날 것이니 산으로 도망을 가되,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고 며느리에게 귀띔을 해줬대.”
“착한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애절한 비명소리를 외면할 수 없어 결국 돌아봤겠지?”
억불산의 자태를 보며 걷는데 길섶 여기저기에 며느리밥풀꽃이 피어 있다. 진분홍색의 꽃잎에 하얀 밥알을 품은 꽃이 애틋하기만 한데?
“천지인 둘레길에 며느리밥풀꽃이 정말 지천으로 피어 있구나. 여기에도 며느리의 슬픈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겠지?”
“며느리는 하나같이 착한데 시부모는 왜 그리 모질게 그려졌을까.” “요즘 시부모들의 반응이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야.”
장흥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쪽 낮은 언덕의 동학전망대. 이곳에서 동학농민군이 최후까지 관군과 싸웠던 석대들녘을 조망해보자.
“호남지방에서 끝까지 버티다 최후나 다름없는 일전을 이곳에서 치렀을 테지.” “여기가 그런 곳이라고?”
“동학군이 1894년 공주싸움에서 지고 곧이어 전봉준도 붙잡혔지만 장흥에서만큼은 달랐다고. 장흥성을 함락하고 깃발을 꽂아 위세를 떨쳤던 현장이 저 석대야.”
천지인 둘레길을 걷다 보면 장흥읍성을 에워싸고 도는 예양강에서 역사를 만나기도 하고, 토성산과 함께 사계절 꽃이 피는 탐진강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장흥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비교하는 재미도 느끼게 됩니다. 옛 추억과 즐길 거리가 많은 장흥토요시장을 경유하면서 남도의 맛과 전통시장의 멋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지역의 역사와 발전상을 한 눈에 살피며 걷는 이 길은 하늘과 땅, 사람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에 자연스럽고 편안함을 가져다줍니다. 여러분은 이 길에서 어떤 조화로움을 느꼈나요?
산막이옛길 끄트머리에는 누가 살까?
- 충청북도 괴산군 -
산막마을이 있는 충북 칠성면 사은리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유배지였을 만큼 멀고 외진 곳이었습니다. 댐이 생기고 나서 50년간 섬 같은 육지로 고립된 산막이 마을은 배가 아니면 건널 수 없었던 오지 중의 오지였답니다. 덕분에 달래강은 아직도 천연의 생태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댐이 생기고 난 후 지금은 세 가구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옛 오지의 풍경이 궁금해지는 건 이 여행에 산책, 등산, 유람, 여행 그리고 자유라는 다섯 가지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트래블아이>가 제안하는 합니다! ‘산막이옛길 따라서 오지마을을 찾아가라!’
2009년에 이 길이 열리고 난 후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았다. 그런 만큼 점차 그 모습도 꽤 변했다는데?
“예전에는 이곳에도 35가구 정도가 살았던 제법 큰 마을이었는데, 댐이 생기고 난 후에도 15가구가 남았고 지금은 단 세 가구만 살고 있대.”
“이젠 연록색의 소품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아.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자연의 품속에서 담담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이것이 초록여행의 시작 아닐까?”
괴산읍내에서 약 10km, 차로 10분 거리에서 보니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 확장되어 있었다. 과거에는 좁고 굽은 길을 눈에 미끄러져가며 운전해왔는데, 마음 한켠이 씁쓸하다.
“아주머니! 죄송하지만 산막이옛길 입구를 찾아가려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서요. 어떻게 가야 편하게 갈수 있을까요? 여기가 관광지로 바뀌고 있음이 주차장에서부터 느껴지네요.”
“산막이마을로 가려면 '괴산수력발전소'를 찾으면 제일 쉬워요. 수력발전소에서 강 오른쪽 길을 따라가면 외사리 사오랑마을인데, 여기서 산길을 따라 2.5km 정도 가면 돼요.”
한겨울만 아니라면 산막이옛길은 언제나 신록이 무성하고 호수엔 유람선이 흰 물결을 일으킨다. 길마다 색다른 경치를 볼 수 있다는데, 어떤 길을 택해볼까?
“주차장에서 산막이마을까지 오가는 길은 세 가지가 있어요. 산비탈 오솔길과 산 정상 등산길, 그리고 호수 유람선을 타는 수상루트가 있지요.”
“지난 겨울에 왔을 땐 눈이 많아 산비탈길로만 오갔지만 이번엔 등산로를 이용해야겠어요. 호수로 파고 들어온 땅 ‘한반도 지형’을 꼭 한번 봐야겠기에."
이 산엔 사랑을 주제로 하는 나무가 의외로 많다. 희귀한 정사목과 연리지가 그렇다. 여기서부터 이어지는 길에 ‘사랑의 결정체’ 하트송(松)을 찾을 수 있다는데?
“노루샘에서 등잔봉으로 오르는 오솔길의 6~7부 능선 길 왼쪽 경사지에 여러 나무와 섞여 있는 소나무를 봐. 양팔을 들어 하트 모양을 그리는 사람의 모습과 똑같아!”
“그런데 한 쪽 가지는 힘에 부쳐 다 못 들어 올려졌네. 사랑은 나 혼자가 아니라 옆에서 누군가가 배려해 주면서 함께 해야 아름답게 완성되는 것임을 이 나무는 말해주고 있는 것 같지?"
등잔봉까지 오르는 내내 호수와 산의 풍치가 좋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본다. 하지만 잠시 앉아 땀을 식히고 다시 한참을 올라야 만나는 등잔봉.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닌데?
“이 봉우리까지 오르는데 약 40분 정도 걸렸구나. 등잔불과 전혀 닮지 않았는데 왜 등잔불일까?”
“등잔봉은 옛날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간 아들을 위해 등잔불을 켜놓고 100일 기도를 올려 효험을 봤다 해서 붙은 이름이야. 지금도 그 효험이 있다 해 찾는 사람들이 꽤 있다지.”
등잔봉에서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면 한반도지형 전망대가 나온다. 능선길이 아기자기해서 이 역시 지루하지 않다. 하지만 보는 각도를 알아야 한반도지형이 보인다는데?
“능선에 오르면 어디서나 보이지만 이 위치에서 봐야 그나마 가장 좋은 각도라는데?”
“정확해! 하지만 한반도지형과 아주 흡사하진 않아. 대체적인 윤곽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정도랄까.” “어쨌든 가슴이 확 트이는 아름다운 경치임에는 틀림이 없구나!”
큰 걸음으로 쭉쭉 내려가니 누가 봐도 산막이마을이라 할 수 있는 오지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실제 입구에서 마주한 첫인상은 어떨까?
“돌판에 새겨진 이 시를 좀 봐봐. 이런 곳에 시가 전시돼 있으니 더욱 예뻐 보여. 떡메 치는 사람들, 계곡물 옆엔 물레방아가 도는 모습도 너무 운치 있지 않니?”
“이리 와서 떡메 한번 쳐봐요! 여기 줄서서 떡도 한번 맛보고 가!” “떡방아 소리가 나는 곳이 저기구나. 아주머니가 부르시니 한번 가볼까?”
입구에 들어서니 예전에는 없던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전국적인 관광지가 돼서 그런지 한 집씩 늘고 있다. 하지만 뒤편에는 오지의 모습을 간직한 가옥들이 여전하다.
“이강순 할머니 맞으시죠? 저희 모르시겠어요? 그때 도토리묵 무침하고 좁쌀막걸리 차려주시는 밥상도 받아서 맛있게 먹었었는데. 큰따님과 사위분도 함께 맞아주셨잖아요.”
“내 못알아볼 뻔했네! 언제 온다 하고 기다리다가 내내 잊어버렸지 뭐야. 젊은이들 다시 와줘서 정말 고맙네.”
계곡 따라 이어지는 희미한 산막이옛길은 괴산호수를 따라 펼쳐진 길이 4㎞ 가량 이어집니다. 산막이마을에서 나오는 길은 계획한 대로 산비탈 오솔길이 이어집니다. 이 오솔길에는 녹음의 터널이 있습니다. 머리 위엔 녹음이 우거지고 발아래는 맑은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진 길이 다시 한 번 펼쳐집니다. 도중에 있는 앉은뱅이약수엔 사람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물 한 모금 순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오지마을에서 여러분이 찾은 건 뭔가요? 또, 심호흡하며 유유자적 거닐기에도 딱 좋은 이 길에서 무엇을 찾았나요?
세상을 바꾸는 어머니의 힘
- 경기도 고양시 -
SNS의 강자로 떠오른 고양시인 만큼, 고양시에 가 보고 싶어 하시는 분들도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고양 600년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단연 덕양산 행주산성에서 있었던 행주대첩입니다. 고양시에 가면 행주산성은 물론, 이 행주대첩에 관련된 이야기와 축제들도 만나 수 있답니다. 그런데 권율장군의 이름보다 더 유명한 것은 바로 긴 치마를 짧게 잘라 입고 돌을 던져 조선군을 승리로 이끈 부녀자들입니다.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고양시에서, 나라도 지켜내는 어머니의 힘을 느껴라!’
임진왜란 때 7년 간 조선 군대를 총 지휘한 명장인 권율장군. 이곳, 행주산성은 행주대첩, 진주대첩, 한산도 대첩의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산성이 일어났던 곳!
“맞아! 중학교 때 배웠는데 잊고 있었네. 여자들이 한복 치마를 스스로 짧게 잘라 입고 무기가 될 돌덩이들을 정상까지 날랐던 것이 승리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들었어.”
“세상에, 여자가 무거운 돌을 들고 산 정상까지 갔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워. 웬만한 각오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겠는 걸? 우리는 지금 돌을 들지 않았는데도 벌써 숨이 차잖아.”
대첩문을 들어서자마자 근엄한 장군의 모습이 보인다. 바로 행주산성을 승리로 이끈 인물, 권율장군! 산성 아래를 굽어보는 장군의 눈빛에 숨이 막힌다.
“와, 저 늠름한 눈빛을 좀 봐. 두 손으로 칼자루를 꼭 쥐고 꼿꼿이 서 있는 모습이 무엇이든 지켜낼 수 있을 것처럼 든든해 보여.”
“장군의 뒤를 좀 봐. 관군과 의병, 승병들의 모습도 보이네! 아, 저기 부녀자들의 모습도 있어. 모두 힘을 합쳤기에 우리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던 거겠지?”
고양시 동산동 창릉공원에는 ‘동산동 밥 할머니 석상’이라는 석상이 하나 있다. 이름이 무척 재미있는데,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아, 행주대첩에는 숨은 영웅이 하나 더 있다고 들었어. 동산동에 살던 할머니 한 분이 왜군들 몰래 냇물에 석회가루를 풀고는 그것을 조선군의 쌀뜨물이라고 속였다는 거야. 배가 고팠던 왜군들이 그 석회 물을 먹고는 배탈이 나서 사기가 크게 꺾여버렸대.”
“지혜가 대단한 분이셨구나. 동산동 밥 할머니에 대해 더 알고 싶은걸?”
이 할머니의 공적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부녀자들을 모아 여성 의병대를 조직하고, 행주대첩에 참가하도록 이끈 것도 바로 이 전설 속의 할머니라는 사실!
“그 할머니는 부녀자들이 싸울 수 있는 계기를 북돋워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군인들에게 밥을 지어주고 부상병을 치료해 주기까지 했대. 그래서 전쟁이 끝난 뒤에 인조가 이 할머니에게 벼슬까지 내려 주었다던데? 동산동 밥 할머니는 조선 최초의 여성 의병장이래.”
“군인들 모두의 정신적 지주 같은 분이었겠네. 어머니의 힘이 느껴져.”
충장공 권율 도원수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충장사 입구. 이곳에는 삼도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 길에는 꼭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고 한다.
“잠깐, 발걸음을 조심해! 우리 아버지한테 들은 적이 있어. 이 특이하게 생긴 길의 이름은 삼도라고 해. 길 한가운데만 색깔이 다르지? 삼도의 가운데 길은 신이 다니는 길이라, 신도라는 이름이 붙어 있대. 꼭 신도를 지나가야만 한다면 가벼운 목례를 해야 한다고!”
“깜빡할 뻔 했네. 나도 알고 있어. 우입좌출의 법칙도 있으니, 오른쪽으로 들어가야 하지?”
충장사를 다 살펴보았다면, 행주산성 산책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보자. 동산동 밥 할머니와 여성 의병대를 생각한다면 조금 더 특별한 느낌이 들 것 같은데?
“어휴, 아까도 말했지만 정말 대단해. 아직도 정상에 도착하지 못했잖아. 지금은 계단이 만들어진 아름다운 산책길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정비도 안 된 돌길이었을 텐데.”
“맞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 이 길은 더욱 험한 길이었겠지. 어머니들은 가족들을 지켜내고 싶은 마음에 죽기 살기로 이 길을 올랐을 거야. 무거운 돌덩이를 지고 말이야.”
행주산성 전망대까지 올라가면 백운대, 노적봉, 나한봉, 문수봉, 보현봉이 보인다. 이 중 왼쪽에서 두 번째에 있는 것이 바로 노적봉. 노적봉에 숨은 이야기를 들어볼까?
“아까 동산동 밥 할머니가 냇물에 석회가루를 풀고 그것을 왜군에게 쌀뜨물이라고 속였다고 말했지? 그 때 왜군에게 ‘저것이 바로 조선군의 산더미 같은 군량미다’라며 보여주었던 것이 바로 저 노적봉이야. 노적봉을 볏짚으로 감싸서 쌀가마니처럼 보이게 만들었다고 해.”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 굉장한 분이야. 어머니다운 모습이 엿보이는 대단한 지혜인데?”
산을 내려가며, 행주 농악놀이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행주대첩의 승전을 기리는 이 놀이에도 어머니들만의 특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는데?
“행주대첩제, 행주문화제와 같은 행사가 산성에서 펼쳐지면 어김없이 행주 농악놀이가 등장하는데, 농악놀이의 마지막에는 어머니들이 행주치마를 입고 ‘행주치마 놀이’를 펼친대.”
“나, 왠지 반성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야. 내가 여자라서 못 한다고 생각했던 일이 많았는데, 여길 둘러보고 나니 그게 전부 내 엄살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 너도 그러니?”
한 가지를 더 알려드리자면, 행주치마의 유래 또한 이 행주대첩에서 시작됩니다. 어머니들이 짧게 잘랐던 그 치마가 바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행주치마의 모양이랍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대단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행주산성에서 어머니의 힘을 느꼈다면, 오늘 저녁에는 우리를 지켜 주시는 어머니의 어깨를 한 번 주물러보는 건 어떨까요? 어머니들이 나라도 지킬 만큼 강한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은 바로 가족들이니까 말예요.
섬진강 발원지를 찾아서
- 전라북도 진안군 -
유장히 흐르는 강이 어느 산 속 조그마한 샘에서 비롯된다는 이야기는 왠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시작은 미미했으나 끝은 창대하기에 그럴 겁니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팔공산자락에서 솟는, 혀끝 간질이는 이름을 가진 데미샘은 이 어여쁜 이름만으로 그 출신을 짐작키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샘은 수많은 발원 가운데 강 하구로부터 가장 먼 ‘최장 발원지’라 합니다. 그야말로 섬진강의 발원이 되는 창대한 샘입니다. 그 사실에 다소 의문점이 생긴다면 직접 가보는 게 가장 좋습니다. <트래블아이>의 미션도 바로 그것입니다!
‘처음’ 혹은 ‘원조’라는 단어를 놓고 지역 간에 갑론을박으로 시끄러울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섬진강의 발원지가 데미샘이라는 데에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 이유는 뭘까?
“섬진강 발원지를 놓고 <택리지>에 마이산, <동국여지승람>엔 지리산, <동아대백과사전>엔 팔공산 하는 식으로 주장이 중구난방이었죠. 강의 발원은 한두 군데도 아니거니와 호남 정맥으로 보면 그들 모두가 발원지라 볼 수도 있는데, 어떻게 데미샘이란 사실을 찾아내신 거죠?”
“벌써 오래전 얘기가 됐네요. 1983년 직접 섬진강을 걸으면서 발원지를 계측했어요.”
데미샘으로 가는 길은 인적이 드물다. 마을 위쪽 팔선정이란 정자에서 데미샘에 이르는 1㎞의 산속 오솔길을 걸으면 눈앞에 펼쳐진 황홀경에 자꾸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산기슭에 있는 저 원신암 마을은 한눈에 봐도 10가구도 채 남지 않은 듯하군요. 그래서인지, 내심 허전한 마음도 들고….”
“그래도 이 계곡을 따라 오르는 오솔길은 꽤 호젓한 맛이 있으니 위안을 삼아보는 건 어떠세요. 머리 위로는 총천연색 단풍이, 발아래로는 그보다 낮은 명도의 낙엽이….”
데미샘은 가을이 좋다더니 과연 그렇다. 졸졸 계곡 물소리, 낙엽 밟는 소리와 잠깐의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 등 자연의 소리가 함께 따라온다.
“적막이 흐르는 듯 너무나 고요하다가도 금세 등장하는 산속의 소리들이 있네요.”
“가만, 물소리가 그쳤군요. 가을에 이 산길 풍광은 더없이 좋은데 물이 부족한 게 흠이에요. 그래도 데미샘 물은 결코 마르는 법이 없죠.” “듣고 보니 참 신기하네요.”
수량이 적다는 팔공산자락. 바위틈으로 적은 양이지만 흐르는 물을 발견하게 되면 내심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 발걸음도 더욱 바빠진다.
“다행히 저 계곡 바위 밑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네요. 왠지 데미샘을 빨리 만나봐야 할 것 같아요.”
“하하~ 늘 솟던 샘이 우리가 가는 사이 마를 일은 없을 텐데요. 하지만 바위들이 넓게 펼쳐진 너덜지대가 저기 보이죠? 우리는 곧 데미샘을 만나게 될 겁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쯤 데미샘은 무심히 나타난다. 직경이 두 뼘도 채 안 되는 작은 옹달샘이 옆으로 ‘섬진강 발원샘’이라는 표지석이 자랑스레 서 있다.
“이 글귀를 보니 정말 우리가 데미셈에 오긴 온 모양이군요. 아, 여기를 좀 보세요. 돌더미 사이로 물이 흐르고 있죠?” “새끼손가락보다 얇은 이 물줄기가 바로 225㎞의 호남 젖줄 섬진강의 시작이라니!”
“이 작은 샘에서 솟은 물은 3개도와 10개 시군, 34개 읍면을 지금도 열심히 지나갈 겁니다.”
소문만큼 미묘하진 않은 물맛, 그 대신 맑고 차다. 바로 여기서 데미샘과 섬진강에 얽힌 실타래같은 비밀도 풀수 있을까?
“데미샘의 이름이 궁금하다고 했죠? 여기 글을 한번 읽어볼래요?”
“‘데미샘에 있는 봉우리를 천상데미라고 하는데…’ 흠, ‘데미’라는 말은 ‘더미’ 즉 봉우리를 가리키는 전라도 사투리에서 기원한 것이었군요. 생뚱맞게도 이 스테인리스 안내판이 제 궁금증을 말끔히 해소시켜줄 줄이야!”
여기서 백운동계곡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투구봉, 선각산 시루봉, 덕태산 등과 연계한 코스에 관심이 있다면 이 계곡이 그 출발점이다.
“이름도 잘 모르는 폭포를 잘 찾을 수 있을까 했는데,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니 모두 ‘아아 그 폭포~’ 하며 친절히 알려주네요. 덕분에 데미샘 찾는 것보다 훨씬 쉽게 왔어요.”
“여기는 그다지 이름난 곳이 아니어서 찾는 이들도 많지 않군요. 멀리서 봐도 저기 저 시원하게 내려가는 물줄기가 참 옹골차죠?”
데미샘의 이름을 딴 자연휴양림도 있다. 이곳은 수백여 종의 희귀식물과, 천상데미에서 오계치에 이르는 신갈나무 군락지 등 볼거리를 비롯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데미샘자연휴양림 등산로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게 됐군요. 과거 이곳에 왔을 땐 선각산 등 이 지역 주요 명산의 훼손된 산길을 정비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저는 저 휴양림에 대한 광고를 언젠가 본 적이 있는데, 단지 숙박시설만 갖춘 건 아니라죠. 데미샘과 뛰어난 식생자원을 활용해 생태학습이나 숲 체험 공간이 마련돼 있다죠.”
진안의 백운면은 자연휴양림과 같은 다양한 숙박휴양시설을 갖추고, 산길이나 둘레길이 잘 닦여 있어 여행객들에게 참으로 매력적인 곳입니다. 물길 따라 걷고 지역 인심과 흙내음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이 마을이 섬진강길 걷기 코스의 시발점이 되듯, 팔공산자락에는 섬진강의 창대한 꿈을 품은 데미샘이 흐르고 흘러 장대한 호남의 젖줄이 됩니다. 작은 샘물이 어떻게 강이 되었나를 되짚어보며 물맛도 보고 사색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는 백운면으로 호젓한 남도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떠세요?
그곳에 가기까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복잡한 생각이 들 때 바람이나 좀 쐴 요량으로 밖으로 나서면, 어느 새 마음이 차분해 지곤 합니다. 요즈음에는 도시마다 걷기 좋은 길들을 많이 조성해 놓아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도 했지요. 이 걷기 문화의 시발점, 올레 길. 올레길이 처음 탄생한 곳이 제주도라는 사실을 모르시는 분들도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계 7대 자연 경관 중 한 곳으로 선정된 섬인 제주도에서 호젓이 걷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를 것입니다.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올레길을 따라 성산 일출봉을 찾아가라!’
어디를 둘러봐도 아름다운 곳이 바로 서귀포 시. 21개의 올레길 중 어느 길을 걸을지가 벌써 고민일 것 같은데?
“나는 항상 제주도에 와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곳을 둘러볼 수 있을까 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 같아. 이렇게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그 동안 안보였던 것이 많이 보이는데?”
“일단 가장 가고 싶어 했던 곳이 포함된 길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지? 성산일출봉이 포함 된 올레길은 바로 제 1코스야.”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올레 제 1코스 안내 센터에서 올레패스에 스탬프를 찍는 것. 올레패스에 스탬프를 모으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한다. 올레길을 걷는 법, 함께 배워 볼까?
“올레길을 걷는 법은 아주 쉬워. 파란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면 올레길의 진행 방향, 주황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면 올레길의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는 거야.”
“길을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나지막한 언덕과 돌담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 소담스런 꽃들과 작은 풀벌레, 그리고 따뜻한 날씨까지! 시작이 좋은데?”
올레길을 걷다 보면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에 칠해진 커다란 파란 화살표, 그리고 귀여운 간세들, 그리고…
“잠깐, 간세가 뭐야? 큰 길에서 집까지 이어지는 골목이란 뜻의 올레처럼 제주어인가?”
“거의 맞췄어. 간세는 올레길의 상징인 조랑말의 이름이야. ‘느릿느릿한 게으름뱅이’라는 뜻의 제주어, 간세다리에서 따 온 말이지. 아, 들판에 발자국으로 만들어진 길이 있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올레길을 따라 걸었다는 뜻이겠지? 화살표만큼이나 정확하겠는 걸?”
제주도의 특징 중 하나는 작은 오름이 많다는 것. 올레길은 말미오름과 알오름을 지나는데, 알오름 위에서는 우도와 성산 일출봉의 모습이 훤히 보인다고 한다.
“알오름이라는 이름은 ‘알처럼 작다’는 뜻이라고 해. 정감 있는 우리말이 정말 귀여워. 알오름을 알리는 표지판을 매단 간세까지! 아기자기한 짜임새가 아름답지 않니?”
“우리는 알 위에 올라와 있는 셈이로구나. 저쪽을 좀 봐. 저게 바로 우도, 그리고 저쪽에 보이는 것이 성산 일출봉이야. 전망이 아주 훤한데?”
알오름에서 종달리 쪽으로 들어서도 성산 일출봉의 모습은 계속 보인다. 가만, 그 유명한 성산 일출봉에 대해 한 마디도 않는 것은 실례가 아닐까?
“길이 너무 아름다워서, 우리의 목적인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데도 넋을 놓고 있었어!”
“하하, 그러게 말이야. 걷는 것, 느림의 미학이 바로 이런 것일까?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곳으로도 지정된 오천 살짜리 수성화산! 그 모습과 우리 앞의 들꽃 하나가 똑같이 아름다워 보이니 말이야. 걷다 보니 많은 것이 보이는 것 같아.”
종달리 옛 소금밭을 지나면 해안 도로를 따라 쭉 걷게 된다. 1구간의 매력은 바로 시흥 해안 도로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는데?
“와, 저 맑은 물을 좀 봐! 당장 뛰어들어 발을 담그고 싶을 정도야. 이미 걷다 말고 바다로 뛰어 들어간 사람들도 몇 보이는데? 모래사장의 노란 빛깔에서부터 먼 바다의 검푸른 빛깔까지 이어지는 빛깔이 정말 고와.”
“이끼가 낀 작은 바위들이 널려있는 곳도 있어. 마치 작은 섬들 같지 않니?”
오조리로 들어서면 성산 일출봉이 한층 더 가까이 보인다. 평지 위에 우뚝 솟아 오른 대자연의 신비는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 정도다.
“바다도 아름답지만, 성산 일출봉에 가까이 갈수록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어. 이렇게 천천히 걸어서 가니 점점 두근거림이 더해지는 것 같아.”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성산 일출봉의 지형도 조금씩 선명하게 보이고 있어. 마치 하늘을 향해 땅의 일부분이 날아오른 흔적 같지 않니? 어떻게 저런 모양을 할 수가 있을까?”
마지막으로 숨결을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성산갑문과 성산항을 차례로 지나다 보면 난데없는 서귀포의 선물에 함박웃음이 터질 것!
“하하, 왜 굳이 수마포 방향으로 돌아가야 하나 했더니, 이거 한 방 먹은 기분인 걸?”
“사방이 온통 노랗게 물들었어.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제주도의 유채 꽃밭이구나! 마치 영화 촬영 현장에 온 것 같은 걸? 저쪽에는 말 한 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잖아!” “마치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 성산 일출봉이 코앞에 있어!”
올레길을 따라 성산 일출봉 앞에 섰다면, 잠시 바다와 성산 일출봉이 자아내는 명경을 보며 숨을 고르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때 보이는 바다의 별명은 바로 ‘시의 바다’. 이 풍경을 보면 누구든 시인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뜻의 별명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지치지 않는 풍경들의 향연에 머리가 아찔해 질 지경입니다. 갯무와 억새마저 걷는 이를 반기니, 이곳에 이르렀을 때의 쾌감을 말로 설명하기란 정말 힘든 일일 것 같습니다. 올해, 성산 일출봉에서 맞는 해돋이로 마음을 채워보는 것은 어떠세요?
황금닭의 전설이 내려오는 집
- 경기도 시흥시 -
요즘 많은 사람들이 전통가옥이나 한옥마을을 찾곤 합니다. 아마 분주한 일상을 살아가던 현대인들에게 고즈넉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다가오는 것 때문일 것입니다. 경기도 시흥시에도 유명한 전통가옥이 하나 있는데요. 시흥시에서 마지막으로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전통가옥이라 더욱 그 가치가 높습니다. 특별한 전설까지 전해져 내려와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 곳인데요, 그래서 제안하는 <트래블아이>의 오늘의 미션은 ‘생금집에서 선조들이 전하는 삶의 교훈 얻고 오기’입니다.
컨테이너 박스들이 놓여 있는 곳 끝에 시흥시 향토유적 제7호로 지정된 '생금집' 나온다. 생금집이라는 이름에서 이 전통가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어서, 황금닭 전설 이야기를 들려줘. 궁금해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 “조선조 말엽에 김창관이라는 사람이 마을에서 10여리 떨어진 곳에 나무를 하러 갔는데 생금우물에 닭 한마리가 있던 거지."
"그래서 곱게 싸 집 골방 반닫이에 넣어두는데 닭털 하나가 떨어져 나온 거야. 그 색이 하도 묘연해서 금방으로 가보니 황금이라는 게 아니겠어?”
모두가 황금닭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운다. 서양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있다면 생급집에는 황금알은 낳는 닭이 있다.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래서 얼른 집으로 돌아가 반닫이를 열어 보았는데 닭이 모두 황금으로 변해있었고 닭이 낳은 알들도 황금으로 변해서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 거야."
"그런데도 사치하지 않고 살림을 아끼면서 검소하게 살았다고 해. 열심히 일하고 아씨면 누구든 부자가 된다면서. 그래서 생금집이라는 댁호를 얻은 거지.”
황금알을 낳는 닭 이야기에는 교훈이 담겨있다. 전통가옥에서 교훈까지 얻어가니 삶의 화살표가 그려지는 것 같다.
“아,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 거야?”
“그렇지 않아. 그 소문을 듣고 부부의 딸이 찾아 왔는데 긴 추궁 끝에 황금닭의 비밀을 듣게 되고 딸은 반닫이에서 닭을 꺼내어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어. 그런데 닭이 돌로 변해있던 것이지. 그 후론 다시 황금으로 변하지 않았다고 해.”
금녕 김씨 자손이 12대째 세거하던 곳으로 팔작지붕 집으로 안방과 대청, 부엌과 건넌방, 바깥채로 이루어져 있다, 넓은 대청마루에 앉아서 일상의 고민을 잠시 내려놓는다.
“재미도 있으면서 삶의 교훈도 담고 있는 전설이었구나! 어쩐지 고택에서 들으니 더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 같다. 이제 집안 좀 살펴볼까?”
“용마루가 'ㄱ'자를 이루고 있고 규모도 꽤 큰 걸 보니 부농계층의 집안이었던 같아.” “그래 맞아. 집안 곳곳이나 뒤뜰에 있는 장독들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던 집안인 것 같아.”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형태를 지닌 생금집은 집안 곳곳 당시 생활양식이나 풍습까지 엿볼 수 있다는데?
“안채 12칸에 바깥채가 6칸인 이 가옥은 1913년에 개축되었는데 조금 낡긴 했어도 현재도 당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 "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하라는 이야기에 맞게 검소하고 절제된 양식이 엿보이는 것 같아. 그리고 바닷가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상이 반영되었다고 하는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볏짚으로 만든 작품들이 집안 곳곳 놓여있다. 그밖에도 고무신이며 옛날 물건들이 전통가옥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껏 돋우고 있다.
“난 가옥구조보다도 여기 놓여있는 많은 짚공예에 눈길이 가. 송아지 모형이나 사람을 닮은 인형 같기도 한데, 참 솜씨가 좋다.”
“그러네. 자칫 쓸쓸하거나 썰렁할 수 있는 옛집에 이런 아기자기한 공예품이 있어서 외롭지 않은 것 같아. 무엇보다 짚으로 만들어져서 분위기가 너무 잘 어울려.”
옛 생활모습을 갖춘 가옥이나 문화유산이 점점 사라져 가는 요즘, 생금집은 시흥시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전통 가옥이다. 유일하게 남은 초가집에서 우린 무엇을 느낄 수 있나?
“그런데 시흥에 또 다른 초가집이나 옛 고택이 있을까?” “아니, 안타깝게도 여기 이 생금집이 시흥시에 유일하게 남은 초가집이라고 해. 그래서 더욱 보존해야 할 가치와 의미가 크지.”
“어쩐지 유일하게 남은 곳에서 교훈까지 얻고 가니 다가오는 의미가 더 큰 것 같아.”
향토문화유적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은 생금집을 다녀온 후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황금닭이 전하는 전설과 함께 문화유적 보존에 대한 깊은 뜻도 헤아려본다.
“그냥 옛집이나 고택에 들른다는 마음 혹은 이야기를 듣기위한 호기심 정도로 찾은 것 같은데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이라 새로운 것 같아.”
“그래, 나도 향토문화유적에 대한 관심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교훈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어서 뜻깊고.”
생금집 전설 혹은 황금닭의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고 하여 많은 이들이 찾는 반면 예 생활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리가 허술하여 그에 따른 말들도 참 많습니다. 이에 생금집은 학생들을 초청하여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문화의 계승을 위해 초가지붕을 새로 올리며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느끼는 시간도 가지고 있습니다. 전통문화의 소중함과 고즈넉한 느림의 미학을 얻고 싶다면 생금집에서 황금닭이 들려주는 이야기 한 구절 듣고 가보는 건 어떨까요?
대가야를 보고, 듣고, 겪다
- 경상북도 고령군 -
따스한 햇살과 함께 하는 여행이 그리울 무렵 남도에는 본격적인 꽃잔치가 시작됩니다. 경북 고령에 깃든 철의 왕국이라 불렸던 대가야의 이야기를 알고 계신가요?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시대의 역사보다도 긴 520년여의 세월 동안 그 명성을 떨쳤던 대가야의 고장입니다. 철의 왕국을 건설하고,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가야금까지. 그들의 숨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경북 고령으로 기왕 나선 걸음 가족과 함께라면 더욱 좋습니다. 오늘 <트래블아이> 미션은 ‘대가야를 오감으로 느껴라!’입니다.
개화실 꽃이 피어나는 마을, 개실마을. 그리고 마을을 포근히 둘러 싼 춤추는 나비를 닮았다는, 접무봉. 이 마을에는 어떤 이야기가 꽃피고 있을까?
“나즈막한 돌담장과 묵직한 나무 울타리들 사이로 난 굽이진 골목길은 우리나라의 매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 같아요.”
“가야의 역사 뿐 아니라, 김종직 선생의 후손들이 대를 이으며 살아오고 있는 개실마을에서는 자연체험, 농촌, 역사체험 등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단다.”
가야금의 대가 우륵의 고장이자, 초기 신라와 어깨를 견주던 화려한 문화를 꽃피운 대가야의 유적이 숨쉬는 이곳에는 우륵박물관이 떡하니 자리해 있다.
“박물관의 입구 한편에 있는 우륵 동상이 건장하게 서있어요!”
“그 맞은편에도 가야금을 제작했던 금장지비석이 있구나. 가야금 재료인 오동나무를 납작하게 깎아서 촘촘히 세워둔 모습이 꽤 인상적이야.” “박물관 바로 옆 마을에 조성한 우륵의 집도 빼놓지 말아요!”
우륵박물관은 가야금을 창제한 악성 우륵과 관련된 자료를 발굴ㆍ수집ㆍ보존ㆍ전시하여 국민들이 우륵과 가야금의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륵을 찾아서` 전시실에서는 뭘 보고 왔니?” “우륵이 살았을 당시 대가야의 정황을 보여줬어요. 또 전시실 `악성우륵`에서는 우륵이 어떻게 자라서 음악을 접했고 어떻게 가야 12곡을 만들게 됐는지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졌죠.”
“그야말로 우륵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로구나.”
정정하니, 울리는 가야금의 소리를 따 정정골이라는 옛 이름으로 불리었던 가얏고. 우륵의 가야금 소리를 따라 걷는 가얏고 마을의 길을 따라가볼까?
“요즘에는 잘 들을 수 없는 가야금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지니, 정말 옛 가야의 악성 우륵이 왜가야금을 사랑했는지 알 것만 같아요.”
“그래, 가얏고 마을에서는 가야를 대표했던 가야금과 우륵의 뜻을 이어 가야금 공방, 문화관, 체험관 등을 통해 가야금 문화를 적극 발굴, 보존, 재조명 하고 있단다.”
고아동 벽화고분 속에는 약간의 연꽃그림이 남아있다고 한다. 회가 떨어져버려 거의 사라져버린 벽화 속에 여전히 피어있는 연꽃의 주인은 누구일까?
“대가야의 유일한 벽화고분이라니, 역사적 가치가 엄청나겠어요! 밀폐 되어있어서 직접 들어가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워요.”
“처음 도굴된 채 발견되어, 보수공사와 학술조사를 거친 후 보존하고 있는 것이란다. 아쉽기는 하지만 우리 역사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니, 너무 아쉬워 할 일은 아니란다.”
대가야 왕릉전시관을 비롯한 대가야박물관은 고령에 흩어져 출토된 대가야 유물들을 한 자리에 전시해놓았다. 대가야의 찬란한 유산에 입이 떡 벌어진다.
“순장 문화라니, 조금 무서워요. 살아있는 사람을 함께 묻는 문화가 왜 대가야의 풍습으로 굳어진 걸까요? 현대 사회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인데….”
“옛 사람들은, 죽음은 곧 다음 세상으로 가는 것이라 믿었단다. 이 세상에서 살던 그대로 다음 세상에 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하니, 너무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단다.”
실물 크기로 재현되어있는 순장무덤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잔디가 피어있지 않은 왕릉이 낯설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궁금하다.
“이렇게 큰 건물이 실제 무덤과 같은 크기로 만들어진 것이라니, 이 무덤의 주인은 힘이 정말 강력한 왕이었나봐요.”
“그래, 그의 무덤을 그대로 재현해 직접 들어가 순장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만든 곳이란다. 매장 모습과 문화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으니 얼른 들어가보자.”
신비의 왕국, 대가야. 5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쌓아온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잊지 않으며 그들이 즐긴 문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 바로 대가야박물관이다.
“프로그램이 정말 다양하게 제공되고 있네요. 저는 대가야 용사 체험구역을 가장 해보고 싶어요. 빨리 가요!”
“그래, 활도 만들어보고, 칼, 투구, 갑옷까지 직접 볼 수 있다고 하니 좋은 경험이 될 것 같구나.”
대가야 문화축제의 슬로건은 ‘1500년의 기다림’입니다. 찬란하게 피어났던 대가야의 문화를 잊고 지낸지 1500년. 일제시대, 한국전쟁 등의 아픈 역사를 겪으며 함께 상처 입었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살려내기 위한 고령의 노력이 느껴지는 체험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습니다. 낙동강변의 비옥한 토양과 가야한 줄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을 배경으로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고령! 여러분의 오감을 모두 채워줄 고령으로 이번 주말 여행을 떠나시는 것은 어떤가요?